지난 7월 ‘미국은 현 국제질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는 한 신문의 캠페인 광고에 43명의 국제관계 전공 학자들과 함께 참여했다. 캠페인의 메시지는 ‘지금의 국제질서는 유례없는 세계적 번영을 낳았고, 현대사에서 주요 강국 간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최장기 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미국의 지도력이 이 같은 국제질서 수립을 뒷받침했고, 그 성공 역시 미국의 지도력에 힘 입은 바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런 입장문에 서명을 거부했다. 한편으론 그런 입장문이 별 소용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다른 한편으론 국제적 공감에 입각해 국제질서를 이끄는 ‘자유로운 주도권’을 얘기하면서도 ‘미국의 리더십’에 집착하는 메시지의 모순적 측면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5년 이래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세계적이지도, 각국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는 비판은 옳다. 그럼에도 그 국제질서가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반론 또한 틀리지 않다.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이런 찬반 논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오늘부턴 미국 우선주의로 갈 것이다. 우리는 세계 각국과 우정과 선의를 나누겠지만,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어 “우리는 우리 방식을 다른 나라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방식이 다른 나라에게 모범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 얘기는 미국 역할에 관해 세상을 이끄는 ‘언덕 위의 도시(city on the hill)’에 관한 뿌리깊은 생각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건 순수한 고립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치를 위한 행동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미국의 힘은 행동에 있는 게 아니라 영감을 일으키는데 있다고 본다. 일례로 1821년 아담스 국무장관은 “미국은 밖으로 나아가 괴물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모든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소망한다. 하지만 미국은 스스로 그렇게 됨으로써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려 한다”고 했다.
고립주의 전통은 20세기 미국 외교정책을 관통했다. 그럼에도 20세기 중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민들에게 세계의 다양성을 위해 세계평화를 수호하자면서도, 한편으론 베트남에 1만7,000명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냉전 종결 이래 미국은 7건의 해외전쟁 및 군사작전에 개입했고, 2006년 이라크 침공 이후 부시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반대로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적극적 행동에 무게를 둔 국가안보전략을 내세웠다.
미국인들은 종종 미국을 예외적인 나라로 생각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스스로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로 자처하기도 했다. 대니엘 H. 듀드니 존스 홉킨스대 교수 같은 분석가들은 미국의 예외성이 폭넓게 인정되는 핵심적 이유가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에 대한 강렬한 자유주의적 경향과 이념적 비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건국 당시부터 미국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노예제를 규정한 헌법으로 인해 내적인 모순을 가졌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외교정책에서 어떻게 자유주의 가치를 추구할지에 대해 늘 의견을 달리했다. 듀드니 등에 따르면, “힘과 정의감에 취한 최근의 네오콘 같은 미국인들에게 미국 예외주의는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과 압제를 정당화하고, 국제법과 세계 여론을 무시하는 논리로써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미국 예외주의는 무절제한 미국의 힘과 영향력보다는 각국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국제법과 국제기구 등에 의해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유지하려는 열망의 근간이다.”
20세기가 시작되자 미국은 영국을 대신해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됐으며, 1차 대전 참전으로 힘까지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적잖은 미국인들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고립주의를 선호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해리 트루먼 대통령 등에 이르러서야 미국이 더 이상 고립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두 대통령과 미국의 개방적 역할을 지지하는 각국 동조자들이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안보동맹과 다자기구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경제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은 지난 70년간 이런 체제들을 수호하는 외교정책을 견지했다. 오늘날 기존 체제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세계 민주주의 체제 내에 만연하고 있는 포퓰리즘 때문이다. 트럼프가 2016년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는 처음으로 1945년 이래의 국제질서에 의구심을 제기한 것 역시 그 배경엔 포퓰리즘이 작용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의 문제는 미국이 과연 ‘미국 예외주의’의 두 측면을 잘 정립해낼 수 있을지 여부다. 차기 대통령은 군사적 개입이나 침공을 하지 않으면서 각국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체제를 통해 자유로운 의견을 이끄는 방식으로 세계의 민주적 가치를 증진할 수 있을까?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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