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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조급증에 막힌 소득주도성장

입력
2018.09.07 16:05
수정
2018.09.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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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로또가 주초에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당첨을 기대하며 1주일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어서다. 국내에선 주말 마감시간 직전에 가장 많이 팔린다. 한국인은 속전속결로 결판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도박도 단판승부, 돈벌이도 한탕을 꿈꾼다. 교육정책 경제정책도 조령모개 식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다. 성패를 따지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속도에 중독된 국민은 몇 년 앞을 내다보며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진은 로또 당첨금이 표시된 뉴욕의 신문가판대. /연합뉴스
해외에선 로또가 주초에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당첨을 기대하며 1주일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어서다. 국내에선 주말 마감시간 직전에 가장 많이 팔린다. 한국인은 속전속결로 결판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도박도 단판승부, 돈벌이도 한탕을 꿈꾼다. 교육정책 경제정책도 조령모개 식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다. 성패를 따지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속도에 중독된 국민은 몇 년 앞을 내다보며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진은 로또 당첨금이 표시된 뉴욕의 신문가판대. /연합뉴스

24년 전 유럽 출장을 갔다. 호텔 전화가 비싸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파리나 브뤼셀, 마드리드의 공중전화 앞은 늘 장사진이었다. 30분 넘게 기다리기 일쑤였다. 조급하고 짜증났으나 다들 불만이 없으니 참을 수밖에. 관광지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느긋하게 입장을 기다렸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설까. 인도 영화가 기억난다. 기관사가 철로변에서 장사하던 친지를 우연히 발견하곤 기차를 세운다. 그가 늘어지게 점심을 먹고 올 때까지 승객들은 불평 없이 기다린다.

▦ 2006년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 10’. 1. 자판기 커피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 2.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 3.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지퍼를 먼저 내린다. 4. 삼겹살이 익기 전에 먼저 먹는다. 5.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누른다. 6. 3분 컵라면을 3분 되기 전에 먹는다. 7. 영화관에서 스크롤이 올라가기 전에 나간다. 8.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동시에 양치질을 한다. 9.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닫아 버린다. 10.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미리 마신 뒤 계산한다.

▦ 중국 고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고구려인을 ‘성질이 급하다. 달음박질하듯 빨리 걷는다’고 평한다. 세종은 근정전을 보수하기 위해 기와를 굽도록 지시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은 매사에 빨리 하고자 하여 정밀하지 못하다’고 걱정한다. AP통신은 황우석 사태의 원인을 빨리빨리 문화 탓이라고 봤다. 남보다 빨리 성과를 내겠다는 탐욕이 조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왜 조급한 걸까.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쌀농사에 적응하려 빨리빨리를 내면화했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군사문화의 잔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소득주도성장의 길은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궤도 수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년도 안된 경제지표를 놓고 정책 성과를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50년 넘게 이어져 온 ‘대기업 중심 경제’를 ‘사람 중심 경제’로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은 당장 빵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속도에 중독돼 효율만 따지는 보수언론도 빨리빨리 실패를 인정하란다. 5년 단임 정부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덤빈 게 순진했는지도 모른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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