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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벌어진 ‘토끼 전쟁’

입력
2018.09.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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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서 만난 아기 토끼들.
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서 만난 아기 토끼들.

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 가면 곳곳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이곳에 토끼가 많았던 건 아니다. 공원 관리자들에 따르면 2011년 누군가 토끼 한 쌍을 이곳에 버렸고, 이 토끼가 출산하면서 숫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여기에 토끼를 공원에 버리는 사람들까지 생기면서 ‘몽마르뜨 공원’은 ‘토끼 공원’이라고 불릴 만큼 토끼가 많아졌다.

최근 몽마르뜨 공원이 토끼 문제로 시끄럽다. 서초구청은 지난달 31일 공원 곳곳에 ‘애완용 토끼 사육시설 철거 알림’이라는 공지문을 붙였다. 공원에 버려진 토끼들 때문에 공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몽마르뜨 공원 한 켠에는 철망으로 만들어진 토끼 집 6개가 놓여있다. 토끼들이 고양이, 족제비에게 공격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곳에는 아기 토끼 43마리가 살고 있다.

서초구청의 토끼 집 철거 소식이 전해지자 처음에는 토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토끼들은 어디로 가느냐. 민원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셌다. 하지만 최근에는 몽마르뜨 공원에서 수년간 토끼들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이 “토끼들을 토끼집에 가두고 유기를 조장하는 일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있었다”며 서초구청의 조치에 힘을 보태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이들은 서초구청의 토끼 관리 방안에 동의하면서 대신 ‘토끼 중성화’, ‘생명권 보장’, ‘유기 금지’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또 토끼 집 철거에 대비해 아기 토끼들의 입양 홍보물을 만들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서초구청이 지난 달 31일 설치한 토끼 사육시설 관련 공지문이다.
서초구청이 지난 달 31일 설치한 토끼 사육시설 관련 공지문이다.

지난 6일 ‘토끼 전쟁’이 벌어진 몽마르뜨 공원을 찾았다. 공원 곳곳에 A4 용지 크기의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산책을 나온 인근 주민 김이슬(20)씨는 안내문을 보고 “토끼들은 이제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공원에는 김씨처럼 서초구청의 ‘애완용 토끼 사육시설 철거 알림’ 공지문을 관심 있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공지문 옆에는 하얀색 털의 토끼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 봉사자들과 토끼 반려인들은 토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6일 토끼 집을 청소하던 6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초부터 매일 토끼 집을 청소하고 먹이를 주고 있다고 밝힌 그는 서초구청 결정에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토끼들을 집에 넣어 보호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면서 “하지만 최근 토끼 반려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렇게 가둬두고 중성화도 하지 않고 토끼 수만 늘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몽마르뜨 공원에 설치된 토끼 집들. 한 60대 여성이 홀로 이 곳을 돌보고 있었다.
몽마르뜨 공원에 설치된 토끼 집들. 한 60대 여성이 홀로 이 곳을 돌보고 있었다.
온 몸에 흙이 묻은 토끼. 이 토끼는 최근 출산을 했다고 한다. 토끼 케이지 속 아기 토끼를 한참 바라봤다.
온 몸에 흙이 묻은 토끼. 이 토끼는 최근 출산을 했다고 한다. 토끼 케이지 속 아기 토끼를 한참 바라봤다.

‘몽마르뜨 공원’에는 새끼를 낳지 못하게 하는 중성화 수술을 한 토끼가 없다. 때문에 올 여름에만 이 곳에서 아기 토끼 43마리가 태어났다. 중성화 수술은 토끼 개체수 조절뿐만 아니라 토끼 건강을 위해서도 서양권에서는 필수적으로 행해진다.

공원의 아기 토끼들은 고양이, 족제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사람 손에 의해 어미 젖을 떼지도 못하고 토끼 집에 들어갔다. 토끼 반려인들은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제대로 된 가정에 입양하지 못한다면 아기 토끼들은 엄마 토끼 옆에서 야생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겨울이면 토끼 보호를 위해 인근 주민들이 토끼를 보호했다가 봄이 되면 공원에 다시 풀어놓는 것도 논란이 됐다. 야생성을 잃은 토끼들이 공원의 환경에 적응 하지 못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토끼보호단체 ‘집토끼협회’ 등에 따르면 집에서 기르던 토끼를 공원에 다시 내놓는 것은 죽음에 몰아넣는 것과 같다.

또 공원의 봉사자들은 토끼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 건빵 등을 주는 것도 ‘동물 학대’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만난 토끼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만난 토끼다.

서초구청은 토끼와의 공생을 위해 고심 중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동물단체의 자문을 얻고 얼마 전에는 서울대공원 견학도 다녀왔다”며 “토끼 중성화, 토끼 방생장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끼 반려인들은 서초구청에 “몽마르뜨 공원에 살고 있는 토끼의 생명을 보호하고, 토끼 유기를 막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몽마르뜨 공원이 ‘토끼 유기 공원’이 된 것도 서초구청의 관리 소홀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토끼 반려인 이경윤(19)씨는 “‘여기에 풀도 많으니 토끼가 잘 살 거야’라고 생각해 토끼를 유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려인 권순조(39)씨는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돌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토끼 공원’이라고 불리는 몽마르뜨 공원에서 토끼가 잘 살면 잘 살수록 더 마음 편하게 유기하는 것 같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은 토끼 유기 방지를 위한 경고 문구를 담은 현수막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

몽마르뜨 공원에서는 현재 토끼 반려인들에 의해 아기 토끼들 입양이 진행되고 있다. 토끼 한 마리라도 좋은 가정에 보내주려는 것이다. 입양 조건에는 토끼를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사 나가면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 버리는 사람만 늘어나요.” ‘토끼 공원’이라고 불리는 몽마르뜨 공원은 어쩌면 ‘토끼 유기 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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