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영화의 장면처럼 흘러가요. 나는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해요. 물건에 껍질을 씌우고 라벨을 붙여요. 벨트와 물건은 동일한 간격으로 움직이는데 마음이나 영혼이 있을 지도 모르는 나는 문득 문득 일정한 속도를 놓쳐요. 아니 놓치려는 순간, 기계보다 더 정확한 사수의 외침이 들려와요. “저기, 너 말이야/죽으면 계속 커진다 생물일 때 꼼꼼하게 해”

나에게 하는 말인가요? 물건으로 만들고 있었을 수도 있는 생물에게 하는 말인가요? 어느 쪽으로 읽어도 섬뜩하기는 매한가지예요. “벨트 위를 보는 건 오직 두 눈”이라는 사수의 말은 사실이니까요. 이 말은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 두 손을 열심히 움직이게 해요. 벨트가 멈추고 소등이 되었는데도 다시 승객이 되게 해요. 차에 실려 졸다 보면 자의인 듯 타의인 듯 집에 도착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을수록 드론의 시선이 가동돼요. 작은 벨트를 벗어나면 그보다 조금 더 큰 벨트, 또 그보다 큰 벨트가 겹겹이에요. 얽히고설킨, 그러나 부딪치지 않는 고속도로처럼 말이죠. 아, 이때, 벨트에 포위된 나에게서, “어디로./나로부터/멀리, 이것을 추락이라고 말하던 노래가 있었다”는 문장이 흘러나왔지요. 마치 견고함을 한순간에 부드럽게 탈출하는 노래처럼요. 나로부터 멀리, 이 추락은 “내가 원하는 나는 나로부터 멀리 있다”와 이중창이지요. 나로부터 내가 멀리 갔구나를 상기하는 것, 그것은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한 것이지요. 노래에게는 노래를 벗어나는 노래가 필요해. 나에게도 나를 벗어나는 내가 필요해. 화음이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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