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안 되는 자녀에게 “서류 받아오라” 요구도
한 독거노인이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하기 위해 강서구청에 자필로 적어 낸 사유서. 보건복지부가 정한 필수 서류가 아닌데도 구청이 요구했다. 빈곤사회연대 제공

“독거노인 할머니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염치 불구하고 주민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중략) 자녀는 있지만 가정형편이 안 좋아 경제적 지원을 못해주고 있습니다. 신청서 잘 읽어주시고 도와주세요.”

독거노인 A씨가 지난 3일 강서구청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해 달라며 제출한 ‘수급 신청 사유서’의 내용이다. 5일 빈곤사회연대가 공개한 사유서에는 ‘살아온 내력, 지원받고 싶은 내용, 부양의무자와의 관계, 기타 참고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서류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수급자 신청 시 제출해야 할 필수 서류가 아니다. 강서구청이 임의로 요구하는 것이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강서구청은 이외에도 사업장 정보가 구체적으로 적힌 근로활동 및 소득 신고서, 고용임금 확인서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며 “강서구에만 한정된 일도 아니고 여러 구청에서 이런 ‘임의서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의 사유서가 이날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급속히 확산된 후 복지부는 “확인 결과 강서구청에서 관례적으로 해 온 것이고 해당 서류의 요구를 멈추겠다고 했다”고 빈곤사회연대 측에 알려왔다. 아울러 “수급 신청을 위축시킬 수 있는 (필수적이지 않은) 서류의 요구에 대해 점검하고, 최소화하도록 전달하겠다”고 설명했다고 김 사무국장은 전했다.

그러나 A씨가 수급자 선정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부당한 서류 요구만이 아니었다. 힘들게 사유서를 작성했지만 자녀들에게 금융정보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요구를 받았다.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면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주 보지도 않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구청 직원은 “전화번호도 있으니 관계 단절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A 할머니는 비참한 심정에 “이렇게 창피 당하느니 살고 싶지 않다”고 부르짖었다. 부양의무자 조건을 폐지하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이지만, 올해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예정돼 있을 뿐, 가장 필요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폐지 계획은 나와 있지 않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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