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내한공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러시아 국민가수 이오시프 코브존. 연합뉴스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용사들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 ‘백학’의 첫머리다. 백학을 부른 러시아의 원로 국민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30일(현지시간) 병환으로 숨졌다. 향년 80세.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코브존 부인의 보좌관은 “이오시프 다비도비치(코브존)가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면서 “우리 모두가 울고 있다”고 전했다.

코브존은 지난 7월 무의식 상태에서 응급차에 실려 와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이달 7일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10년 넘게 암과 투병하면서 2004년과 2009년 두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조전을 보내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앞서 2016년 12월에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국방부 소속 투폴레프(Tu)-154 항공기가 공연을 위해 시리아로 가던 중 추락해 군 합창단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단원을 포함해 92명이 사망했다. 이때 코브존도 공연 참가 제안을 받았지만, 치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절했고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하지만 오랜 동안 그를 괴롭혀 온 지병인 암을 끝내 이겨내진 못했다.

코브존은 러시아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애국적인 정서의 가요들을 주로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1987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정치에 입문해 1997년부터 하원의원을 지냈다. 2011년부터는 하원 문화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맡아왔다. 2002년 10월 모스크바의 두브로프카 극장에서 일어난 체첸 무장 반군의 인질 사건 당시 협상에 참여해 관객 일부를 구출해 낸 공로로 용맹 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러시아를 지지하면서 고국인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빚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코브존의 노래 백학은 전장에서 동료 전우를 잃은 전사의 슬픔과 애수를 담았다. 원래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 체첸 자치공화국의 민요인데 코브존이 매력적인 중저음을 담아 리메이크해 부르면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백학을 타이틀곡으로 삽입한 드라마 모래시계는 1995년 6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코브존은 첫 내한공연에 나서는 등 한국과 러시아 간 문화사절로도 활약했다. 고인의 유해는 다음달 2일 모스크바 남서쪽 보스트랴콥스키 공동묘지에 묻힌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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