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비영리단체 설립 허가
지정기부금단체 등록 안하면
내부자 고발 외 파악 방법 없어
조희팔 이영학 기부금 사기처럼
곪을 대로 곪은 뒤에야 세상에
조희팔 사건 피해자를 상대로 강연하는 A시민연대 대표 김모씨.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제공

“단체 등록조차 되지 않은 곳입니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꼽히는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에게 기부금 명목으로 10년간 사기를 친 단체(본보 28일자 12면)의 존재를 묻자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답이다. “지정기부금단체 등록은커녕 기본적인 비영리단체 설립 허가조차 받지 않아 행정기관에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 따랐다. 그러면서 “10년간 회원들이 단체를 믿고 아무런 신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법망의 허점을 노린 ‘유령 단체’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기 피해자들을 기부금 사기로 다시 울린 셈이다.

기부금 사기는 비슷한 양상을 띤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시민들의 선의, 잊혀진 사건이 해결되길 바라는 피해자들의 염원을 교묘히 악용한다. 관련 정보가 매스컴에 뜨고→다른 매체에 재탕되면서 사실로 굳어지고→사기꾼들은 그 정보를 부풀려 범죄에 활용하고→단체나 해당 인물에 대한 정확한 검증이나 확인은 생략된 채→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식이다. 관계 기관의 대처는 늘 사후약방문이다.

이번에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붙잡힌 A시민연대 대표 김모(50)씨의 범행 수법이 그렇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8년 미궁에 빠진 조희팔 사건 해결을 돕는 단체 대표로 방송에 등장하더니, 이를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대형 유사수신 피해자들을 접촉했다. 이런 활동이 다시 방송을 타면서 그는 유명해졌고, 소송 명목으로 기부금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간 5,000여명에게 20억4,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지난해 딸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이영학(36)의 기부금 사기 역시 비슷한 패턴을 그렸다. 이영학이 2005년부터 받은 기부금은 12억8,000만원이었다.

특히 두 사건 모두 지정기부금단체(개인) 등록을 하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연간 누계 1,000만원 이상 기부금을 모집하기 위해선 행안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이 안 돼 있으니 역설적으로 관의 감독에서 자유로웠다. 기부자들은 자신이 낸 기부금이 횡령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법적으로 등록된 곳이 아니기에 기부금 사용내역을 요구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기부금의 특성상 기부금 수혜 대상을 믿거나(이영학의 경우), 기부자들 사이에서 말썽꾼으로 찍힐까 봐 대놓고 의심하지 않았다. A시민연대에서 오래 활동했다는 B씨는 “기부금 사용에 의문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다른 피해자단체의) 앞잡이’라고 비난 받고 뒷조사까지 당했다. 사이비 종교집단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부금 사기는 곪을 대로 곪은 뒤에야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등록을 안 하면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사법 및 행정 당국이 손 놓고 있는 실정이라 내부 고발 등이 없으면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실제 서울시 관계자는 “내부자가 경찰에 신고하거나 지자체에 제보하지 않는 이상 미등록 기부단체를 알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자가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해당 단체나 개인에 대해 꼼꼼한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각 기관들도 뒷짐만 질 게 아니라 할 일이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은 “1차적으로 언론이 걸러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매스컴을 통한 기부금 사기 사례에 관심을 갖고 심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선제적으로 기부금 횡령 의심 단체 및 개인을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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