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남아, 교통정체와의 전쟁

30㎞ 이동하는데 3시간 넘기도
“중요한 약속은 하루 한개만 잡아”
퇴근길 정체 피하려는 불문율도
인도네시아 교통정체로 연간 약 6조원 손실
필리핀ㆍ베트남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중교통 부족해 자기 차ㆍ오토바이 몰아
정체 악순환… 전철 건설 등 박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한 고속도로 풍경. 꽉 막힌 도로 한 복판에 먹거리를 든 상인들이 운전자에 접근해 물건을 판다. 자동차 외에 교통수단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직접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지난해 9월 촬영된 사진이지만,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카르타=정민승 특파원

지난 18일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에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주경기장까지 이동하는 영상이 ‘중계’됐다. 도중에 길이 막히자 전용차에서 내린 조코위 대통령이 오토바이를 직접 몰아 경기장에 도착하는 내용이다. 일부 장면에서 헬멧을 착용한 스턴트맨(대역)을 썼지만 영상에 등장한 것과 똑같은 오토바이가 경기장에 도착하고, 이어 개막식 무대에 오토바이 운전자와 같은 복장을 한 조코위 대통령이 등장하자 환호가 쏟아졌다. 조코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겨냥, 친 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개막식을 이용했다는 평가와 함께 교통정체로 악명 높은, 부끄러운 자카르타의 모습을 세상에 ‘홍보’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거대한 교통지옥

자카르타를 찾는 비즈니스맨들 사이에는 불문율 하나가 있다. ‘중요한 약속은 하루 2개 이상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다 할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이동 때 택시가 주로 이용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길 때문에 일을 망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설마’ 하던 이들도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자카르타 시내까지, 고작 30㎞ 거리를 이동하는 데 3시간을 쓰고 보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다른 교통 수단은 없다.

특히 평일 오후 눈 앞에 보이는 목적지를 놓고도 1, 2시간씩 차에 갇히는 일도 부지기수다. 약속 시간에 20, 30분씩 늦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퇴근길 정체를 피하기 위해 ‘저녁’ 약속을 오후 4시로 잡는 경우도 있다.

동남아에서 교통체증은 자카르타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발도상에 있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대부분의 대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다. 높은 경제성장으로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면서 자동차 판매가 급증한 때문이다. 특히 필리핀의 경우 지난해 47만3,943대가 팔려 무려 전년 대비 17.3%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이렇게 늘어난 자동차들이 교통체증을 가중시켜 동남아 전역에서 18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은 수도 방콕에 일찌감치 지상철(BTS)을 설치, 이 지역에서는 앞선 대중교통 인프라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방콕 시내 중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노선 확장 계획이 지연되면서 최근 다시 ‘교통지옥’ 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방콕에서는 미터기가 설치된 택시라 하더라도 탑승 전 기사와 가격을 정하고 타야 할 정도로 정체 문제가 심각하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퇴근길 풍경. 대중교통이 없다시피 해 모든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출근길에 나선다. 지난해 기준 60만대의 자동차와 700만대가 넘는 오토바이들이 한데 섞여 달린다. 하노이 호찌민시에 일본의 공적개발원조 자금으로 전철 건설 공사를 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오토바이의 시내 진입을 제한한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인프라 확대 전쟁

연 6, 7%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통을 포함한 인프라 분야 투자는 필수적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싱가포르와 브루나이, 라오스를 제외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7개 국가들이 현재의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연 1,470억달러(164조원)를 해당 분야에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투자액은 그 3분의 1 수준인, 550억달러에 그쳤다.

아세안 각국도 생산 및 거주 환경 개선을 위한 인프라 투자, 특히 물류와 직결되는 원활한 교통 기반 없이는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도 적시에 적절하게 구축된 교통 인프라가 꼽힌다. 태국은 방콕으로 집중되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지방으로 분산, 혼잡도를 끌어내리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했지만 해당 지역과 수도를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 구축이 지연되면서 수도권 교통체증이 심해진 것은 물론 투자 유치에도 애로를 겪었다.

각국이 대중교통을 확충하고 주요도시들의 교통정체를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경제 중심 호찌민시와 수도 하노이에는 2020년말 개통을 목표로 대량수송시스템(MRT, 전철)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시의 경우 6개의 전철과 2개의 경전철 노선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오토바이의 도심 진입을 금지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자카르타는 내년 3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막바지 MRT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니케이 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자카르타는 1980년대부터 MRT 설치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재정난으로 연거푸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구 1,000만의 자카르타에서만 교통정체로 연간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가 낭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역시 2025년까지 수도 마닐라의 남북을 관통하는 25.3㎞ 길이의 전철을 신설, 북부 마닐라에서 공항까지의 소요 시간을 기존 2~3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이는 등 도심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행정부는 2022년까지 교통을 포함한 인프라 분야에 1,800억달러(약 201조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박번순 고려대 경제통계학과 교수는 “한 나라의 대표 도시가 혼잡하면 ‘이런 나라서 무슨 사업을 하겠느냐’는 인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통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며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대량수송교통 체계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호찌민시 중심에 자리잡은 벤탄 시장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철 1호선 공사 현장 앞으로 오토바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0년말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개통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자금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공사는 다양한 이유로 지연되고 있다. 22일에는 베트남 언론이 ‘공사 현장 감독관이 월 3만달러의 월급을 받아 챙겨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교통지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자카르타를 세상에 알린 영상과 연결된 아시안게임 개막식의 한 장면. 지난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분한 라이더가 개막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자카르타=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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