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남겼던 마지막 유묵의 문구는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안 의사는 내일 죽음을 앞두고도 책을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안 의사의 말에 내심 뜨끔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OECD 국가 국민 중 매일 책 읽는 사람이 가장 적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매일 책 읽는 사람은 영국 32.6%, 아일랜드 31.5%, 독일 26.9%, 프랑스 23%이고 OECD 국가 평균은 20.2%다. 그런데 한국은 고작 8.4%에 불과하다. 10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가장 책 안 읽는 국민이란 오명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만 15세 이상 국민이 1년에 1권 이상 책 읽은 사람의 비율을 독서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2013년 기준 74.4%로 OECD 평균 76.5%에 못 미친다. 스웨덴은 85.7%, 덴마크는 84.9%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독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5년에는 65.3%로 떨어졌고 2017년에는 59.9%로 60% 아래로 진입했다. 전자책까지 포함해도 2017년 독서율은 62.3%에 불과하다. 만 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1회 이상 공공도서관 이용자 비율을 보더라도 한국은 32%로 스웨덴 74%, 핀란드 66% 등 북유럽국가의 절반도 안 된다. 종이책 독서율과 독서량은 물론이고 월평균 서적 구입비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런 수치들은 심각한 위기 징후다. 옛 성현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가르쳐 왔는데, 책을 보려 하지 않는 한국인들은 길을 잃어버렸거나 아예 길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여러 가지다. 교양, 정보,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간접경험, 자기성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지식과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소중한 경험, 상상으로 만들어진 멋진 이야기,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성찰도 담겨 있다.

성인보다는 청소년의 독서율이 높지만 요즘 청소년은 인쇄매체보다 영상매체에 더 익숙하다. 검색할 때도 텍스트 기반 정보 검색보다는 유튜브 같은 영상을 선호한다. 물론 종이책을 안 본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독서율이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 증거도 없다. 하지만 종이책에는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와 생각, 인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호모 사피엔스만이 갖는 집단지성의 힘 때문이다. 그 힘의 발원지가 종이책이다. 2세기경 중국 후한에서 종이가 만들어졌고 이후 종이책이 탄생했다. 종이책 덕분에 인류는 생각과 지혜, 지식과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하고 공유하고 후세에 전승할 수도 있게 됐다. 호모사피엔스는 책 읽는 동물이다.

문체부는 올해를 ‘책의 해’로 정하고 독서 진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독서를 권장하기 이전에 독서는 몸에 밴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면 무더위도, 일상의 피로도 이겨낼 수 있다. 개권유익(開卷有益), 즉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는 법이다. 책 읽는 것이 가장 남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봐도 책 읽는 사람(Reader)이 반드시 리더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리더들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휴가 중에는 늘 독서삼매경에 빠지며 SNS를 통해 양서를 추천하곤 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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