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ㆍ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냄)해다오.”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108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 의사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해서다. 고인은 한국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다는 이유로 뤼순(旅順)의 일본 형무소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 유해를 찾지 못해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라는 안 의사의 유언은 108년이 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교육부 블로그

당시 일본은 안 의사의 묘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유해를 가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했다. 그 위치를 알 수 없어 유해 발굴을 위한 조사가 수 차례 있었지만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중 공동 발굴단은 뤼순 형무소장 딸의 진술을 토대로 2008년 형무소 북서쪽 야산을 발굴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발굴하려고 했던 지역의 절반 가량에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서 더 진행할 수도 없었다.

이후 중국이 단독으로 형무소 인근 야산의 고려인 묘지를 발굴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북한도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의 명령으로 조사를 벌였고, 1986년 대규모 발굴단을 파견해 뤼순 형무소에서 2㎞ 떨어진 둥산포 사형수 공동묘지를 발굴하려 했으나 포기했다. 현장이 고구마 밭으로 개간된 데다 사형수를 매장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형무소 관계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2014년 우리 국가보훈처는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농지로 개간된 해당 지역 땅 속을 지표투과레이더로 탐지해보겠다고 했으나 중국 정부가 거절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남북 공동사업으로 추진한다면 허가해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광복절 73주년을 앞두고 독립 유공자ㆍ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내년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북한과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발굴에 재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전 모습(왼쪽 사진)과 안 의사의 옥중 친필 유묵인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ㆍ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안 의사는 1909년 죽음으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끓어 맹세해 유묵의 낙관 자리에 찍은 손바닥 자국에 약지 한 마디가 없다. 연합뉴스

손수호 변호사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안 의사 유해 발굴사업에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에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법의 레이더 조사를 하게 된 것 ▦설령 유해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조사과정에서 자료를 얻게 돼 항일투쟁의 귀중한 자료가 집적되는 것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 등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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