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히겠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된 14일, 전 충남지사 정무비서 김지은씨는 입장문을 내고 법정다툼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2018년 1월부터 이어진 ‘미투(#MeToo)운동’과 관련한 첫 주요 재판 선고가 ‘업무상 위력’의 존재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결론 나면서 여성계는 일제히 ‘후퇴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1심 선고 직후인 오전 11시30분, 재판 과정에서 김씨를 지원해온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업무상 위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면서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성단체 회원들은 ‘안희정 성폭력 인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울분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김씨 측은 즉각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씨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을 통해 “지금의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 변호인인 정혜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성 감수성(성평등적 관점에서 다른 성별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기초한 판결이 아니며, 최근 판결 동향이나 선진국 추세에도 역행했다”며 “잘못된 1심 판결에 즉시 항소해 상급심에서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여성학자와 여성단체들도 ‘남성 권력 편향적 판결’이라 지적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권수현 부대표는 ”무죄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인식이 얼마나 남성 권력자 편향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권력관계 하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수행비서로 대표되는 ‘을 중의 을’이 어떻게 사는지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오늘 판결은 1994년 한국 최초의 성희롱 판결이 있었던 23년 전보다 훨씬 후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판결로 김씨를 지원해온 여성계도 한 차례 타격을 입게 됐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1심 재판은 미투운동부터 이어져 온 ‘한국 반(反)성폭력 운동’에 중요한 기점이었다”며 “13일 ‘홍대 몰카’ 실형 선고에 이어 안 전 지사 무죄 선고는 한국 여성운동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봉쇄하려는 움직임”이라 해석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무죄 판결은 김씨 이후 ‘미투 폭로’ 용기를 낸 많은 피해자들을 좌절시키고 있다”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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