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지 품은 이상향...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문경 가은읍 선유구곡에서 피서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넓은 화강암 암반 위로 계곡물이 얕게 퍼져 지역의 대표 피서지이기도 하다. 문경=최흥수기자

신선이 노닐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 산수를 논함에 이 정도면 최상급이다. 전국에 신선과 관련된 지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선유동계곡’만도 괴산 문경 산청 하동 4곳이다. 그 중에서도 문경과 괴산의 두 계곡은 ‘선유구곡’으로 다툰다. 구곡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1130~1200)가 중국 푸젠성에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경영하면서 유래해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이상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수단으로 활성화됐다. 풍광이 좋은 물굽이마다 그에 걸맞은 시 한 수를 얹었으니, 자연을 대하는 선비들의 정신까지 깃든 유산이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여름날 문경의 선유동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이름하여 ‘선유동천 나들길’이다.

바위에 새긴 영원한 우정, 선유칠곡

문경 선유동 계곡은 대야산(931m) 물줄기를 모아 가은으로 흐른다. 선유동천 나들길(이하 나들길)은 가은읍에서 괴산 청천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변, ‘운강 이강년선생기념관’에서 시작해 약 4.5km 상류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데, 아래서부터 ‘선유칠곡’ ‘선유구곡’ ‘용추계곡’으로 구분된다. 산이 험한데 비해 물길 따라 이어지는 길은 용추폭포 오르는 구간을 제외하면 내내 순탄하다.

선유동천 나들길 시작지점인 ‘운강 이강년선생기념관’ 앞마당에 항일 의병장으로 활약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나들길 출발점을 계곡에서 좀 떨어진 ‘이강년선생기념관’으로 잡은 건 문경의 항일투사를 조금이라도 알리려는 의도인 듯하다. 지난 6월에는 이곳에서 ‘의병의 날’ 행사가 열렸다. 가은이 고향인 이강년(1858∼1908)은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 지휘관으로 탐관오리에 맞섰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의병을 일으켜 충북과 강원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청풍(지금의 제천) 금수산 전투에서 체포돼 1908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당했다.

선유칠곡이라 명명한 7인의 이름을 적은 칠우대.
선유동천 나들길 초입에 나리꽃이 곱게 펴 있다.
계곡 곳곳에 물가에서 쉬어갈 공간이 넉넉하다.

실제 나들길 시작은 기념관 건너편 선유칠곡(仙遊七曲)이다. 선유구곡의 아류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구곡에 다 담지 못할 만큼 아름다움이 넘친다고 이해하는 게 맞을 듯하다. 시작 지점 개울가 높은 바위에는 선유칠곡이라 명명한 7명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1884년 갑신생부터 1888년 무자생까지 나이 순대로 나열했다. 그리하여 ‘칠우대’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벗 우(友)가 아니라 어리석을 우(愚) 자를 썼다. 아래 안내판에는 ‘대한제국 말엽 국가 혼란기에 완장리 지역 유림 7인이 보인계(輔仁稧)를 결성하고 완장천 일곱 굽이의 절경을 이름 지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7인의 호에 모두 우(愚)가 들어간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범처럼 달려드는 외세에 무기력한 나라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 처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참된 우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징표로도 읽힌다. 자로 재듯 이해관계를 따지고 들면 우정은 유지될 수 없다. 친구를 위한 일이라면 때로 손해 보고 기꺼이 바보가 될 것도 감수해야 한다. 스스로 어리석은 7인의 우정은 우직한 이 바위가 부서질 날까지 보증된 셈이다.

선유칠곡이 끝나는 지점이자 선유구곡이 시작되는 곳. 계곡 전체에 넓은 바위가 고르게 분포해 쉬어가기 좋다.

이곳부터 칠곡은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마음을 씻는 완심대(浣心坮), 꽃잎을 담은 망화담(網花潭), 흰 돌이 아름다운 백석탄(白石灘), 용이 누워 쉬는 와룡담(臥龍潭), 붉은 단풍잎 흐르는 홍류천(紅流川), 달빛 물결 찰랑대는 월파대(月波坮), 그리하여 7리에 이르는 칠리계(七里溪)로 완성된다. 나들길은 산비탈 나무 그늘과 계곡의 너른 바위를 넘나들며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칠곡으로 이름 붙인 곳마다 화강암 암반 위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얇게 퍼져 흐른다. 마음 닿는 곳 어디든 땀을 씻기 좋고, 발을 담그고 쉬어가기에도 적당하다.

항일 투사의 이상향 서린 선유구곡

선유구곡은 외재 정태진(1876~1960)이 기거하며 1~9곡까지 시를 남긴 곳으로, 칠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시작된다. 고운 최치원을 비롯해 여러 선현들이 그 아름다움을 알아 봤지만 정태진에 이르러 비로소 선유구곡으로 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선유구곡 끝자락 바위에 새긴 ‘선유동’ 글자. 최치원이 썼다고 전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구한말에서 6∙25전쟁까지 격동기를 지낸 정태진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1919년 4월 곽종석‧김창숙의 주도로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 서명 운동이 일어날 당시 정태진도 137명의 서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만주에 다녀온 후 동지들을 규합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확보에 전력하다 체포돼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재차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가담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문경으로 귀향했다. 선유구곡을 경영한 것은 그 이후로 보인다.

선유구곡의 제4곡 세심대 각자. 전서체로 쓴 글자도 바위도 예술 작품이다.
선유구곡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손바닥 자국이 난 듯한 바위도 보인다.

나라 잃은 설움과 새 세상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그의 선유구곡은 인간계에서 출발해 이상향을 찾아 신선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름다운 안개가 드리운다는 1곡 옥하대(玉霞臺)부터 신령한 뗏목 모양의 바위 영사석(靈楂石), 맑기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활청담(活淸潭),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세심대(洗心臺), 바라만 봐도 좋은 여울목 관란담(觀瀾潭), 갓끈을 씻고 홀가분해지는 탁청대(濯淸臺), 목욕하고 바람 쐬기 좋은 영귀암(詠歸巖), 물소리가 생황의 연주와 같다는 난생뢰(鸞笙瀨), 구슬 신발처럼 아름다운 옥석대(玉舃臺)로 이어지는 구곡은 거슬러 오를수록 경탄을 자아낸다.

구곡 하나하나의 이름에 담긴 철학적 지혜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계곡 따라 오르며 보는 풍경만으로도 그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만하다. 딱히 어느 지점이라 할 것 없이 넓고 반질반질한 바위 위로 옥구슬처럼 흐르는 물빛이며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맑은 바람이라도 한 번 살랑대면 그대로 신선이 될 듯하다. 1곡부터 9곡까지 바위에 새긴 각자(刻字)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전서체로 새긴 4곡 세심대와 9곡 옥석대는 글자 자체가 작품이다. 요즘 감성 서체로 각광받는 캘리그래피가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선유구곡은 계곡 어디나 훌륭한 물놀이장이다.
선유구곡의 제9곡 옥석대 각자. 옥석은 신선이 신는 구슬 신발이라는 뜻이다.
9곡 바로 위에는 도암 이재를 기리는 학천정이 있다.
옥석대 바위 옆에 이완용이 ‘학천’이라 새겨 놓았다. 그의 이름은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

신선의 구슬 신발을 의미하는 9곡 옥석대 인근에는 최치원이 새겼다는 선유동(仙遊洞)이라는 각자와 도암 이재(1680~1746)를 기리는 학천정이 마주 보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면 곧 학이 되어 선계로 날아갈 것 같은데, 옥석대 바위 옆에 새긴 ‘학천(鶴泉)’이라는 글자를 보고 나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글자 옆에는 대표 친일인사 이완용의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선조인 이재의 사당에 머무르며 남긴 것으로 보인다. 항일투사 이강년기념관에서 출발해, 독립운동가 정태진이 나라 잃은 실의를 달래고자 했던 선유구곡의 끝에서 만나는 그의 흔적이 못내 찜찜하다.

대야산의 용틀임, 용추폭포

선유구곡은 예서 끝나지만 나들길은 계곡 상류 용추폭포로 이어진다. 등산할 목적이 아니라도 용추폭포는 한 번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대야산주차장에서 약 1.1km이고, 식사할 요량으로 계곡 안 식당에 차를 대면 400m 남짓한 거리다.

식당을 지나고부터 제법 오르막 길이지만 아주 힘들지는 않다. 선유구곡과 마찬가지로 계곡물이 한 줄기 떨어지는 곳마다 소(沼)가 형성돼 있고, 주변으로 반질반질한 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어 곳곳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하트 모양으로 움푹 파인 용추폭포.
초록 항아리 물에 몸을 담그면 신선이 따로 없다.

하트 모양으로 옴폭 파인 용추폭포는 이 계곡의 명물로 꼽힌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돌개구멍은 암수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용추 위 화강암 바위에는 용 비늘처럼 보이는 흔적이 선명하다. 초록빛 물 항아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연 풀장이다. 여기에 몸을 담그는 것만도 호강인데, 간혹 바위에서 다이빙하는 피서객이 있어 아찔하다. 만용은 금물이다. 승천한 용도 미끄러진 곳이 아닌가.

문경=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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