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카운터스’ 이일하 감독
日 혐오표현금지법 제정 이끈
시민모임 ‘카운터스’를 조명
혐오에 맞서 폭력까지 동원했던
결사 대장 다카하시가 주인공
우리 안의 혐오와 폭력에 질문 던져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를 연출한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스 참가자 중에는 극우단체 재특회의 위협 때문에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며 “그래서 카운터스 내 여자 조직을 영화에선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조선인을 없애는 일은 해충 구제와 같다” “한국여자를 보면 돌을 던지거나 강간해도 무방하다” 섬뜩한 구호를 부르짖는 시위대가 2013년 일본 도쿄 한인타운을 덮쳤다. 뉴스로만 보던 혐오 시위를 눈앞에서 맞닥뜨린 순간, 주변이 진공상태가 된 듯 공황이 찾아왔다. ‘삐익~’ 귀를 찢는 비프음 환청도 들렸다. 1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처음 겪는 충격에 이일하(44) 감독은 “뭐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 거리 한복판에서 카운터스를 만났다. 카운터스는 극우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혐오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시민 모임이다. 그중에서도 내부 비밀결사대인 오토코구미(남자 조직)가 그의 흥미를 끌었다. “폭력은 폭력으로 처단하겠다”며 혐오 시위대와 몸싸움을 불사하고 때때로 일 대 일 담판도 마다 않는, 카운터스의 악역을 자처하는 이들이다. 대장 다카하시는 전직 야쿠자다. 우연히 혐오 시위를 목격하고 카운터스 활동에 나섰다가 어둠의 세계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그는 말한다. “혐오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니다.”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는 ‘나쁜 놈을 때려잡는 더 나쁜 놈’ 다카하시를 주인공 삼아, 혐오 시위를 제압한 일본 시민 사회의 양심을 들여다본다. 카운터스의 활동은 2016년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13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마주한 이 감독은 ‘왜 오토코구미에 끌렸냐’는 물음에 명쾌하게 답했다. “멋있잖아요.” 그는 오토코구미의 ‘멋짐’을 펑키한 음악과 익살맞은 컴퓨터그래픽을 더해 재기발랄하게 그렸다.

나쁜 짓을 일삼던 전직 야쿠자에서 양심 있는 행동주의자로 변신한 다카하시. 인디스토리 제공

하지만 첫 만남은 살벌했다. 면접 비슷한 자리에 다카하시를 비롯해 덩치 큰 사내 넷이 나왔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찍는지, 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깐깐하게 묻더란다. 그렇게 이 감독은 오토코구미가 됐다. “시민 운동을 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관념이 있어요. 하지만 오토코구미는 스스로 자신들을 쓰레기, 양아치라고 말해요. 이런 우리조차도 혐오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더럽고 나쁜 일은 우리가 뒤에서 처리하겠다’는 오토코구미에 대해 카운터스 내에서 찬반이 팽팽했어요.”

오토코구미는 혐오를 향해선 발길질을 서슴지 않지만, 행동에 나서기 전 온라인 대화방에선 매번 난상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민주적인 조직이다. 특히 다카하시는 강자의 횡포엔 단호하게 맞서고 약자에겐 한없이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시위 나갈 때 명품 옷과 신발로 꾸미고 가요. 그날 하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죠. 진짜 오늘만 사는 사람이었어요.”

일본의 혐오 세력에 맞선 시민 운동 카운터스의 이야기는 난민ㆍ소수자ㆍ이주노동자 혐오 문제에 맞닥뜨린 한국에도 여러 생각할거리를 안긴다. 인디스토리 제공

오토코구미가 혐오 시위대를 폭행해 경찰에 연행되면서 카운터스 운동은 여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오토코구미가 최전선에서 지켜준 덕분에 카운터스에 합류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폭력의 아이러니다. 다카하시도 아이러니한 존재다. 한때 우익 활동을 했고 여전히 우익을 자처하는 그는 오전엔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오후엔 좌파 운동가들과 함께 소수자를 위한 쉼터를 짓는다.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은 질문에 맞닥뜨린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과 혐오를 공격하는 물리적 폭력 중에 무엇이 더 폭력적인가. 폭력을 폭력으로 응대하는 건 정의로운가. 도덕적인 사람만이 시민 운동을 할 자격이 있는가. 이 감독은 “폭력은 무엇인지, 혐오는 무엇인지, ‘우리’라는 집단 말고 ‘당신’이라는 개인 안에 혐오는 없는지, 그 혐오는 건강한지, 관객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이 질문에 대한 약간의 힌트가 심어져 있다. 재특회 창설자 사쿠라이다. 이 감독은 8개월간 이메일을 보낸 끝에 그와 인터뷰를 했다. “사쿠라이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한국도 그렇지 않냐’는 반문에 대화가 끊기기 일쑤였어요. 그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걸 알아도 수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게 직업이 돼 버렸으니까요. 누군가에게 혐오는 쾌락이자 오락이에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기 힘든 소외계층에서 그런 성향이 두드러지죠. 쥐꼬리 만 한 기득권이 무너질 거라 생각하니까요. 한국의 난민 혐오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올해 초 18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이일하 감독은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류효진 기자

이 감독은 2000년 음악과 영화를 공부하러 간 일본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사회 문제를 들추는 성향”이라는 걸 깨닫고는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 ‘극사적 에로스’(1974) ‘천황군대는 진군한다’(1987) 등으로 유명한 일본 다큐멘터리 대가 하라 가즈오가 박사 과정 때 스승이다. 일본 내 한국인 불법 체류 노동자의 노동운동을 다룬 ‘당신의 행진곡’(2003)과 도쿄 조선학교 권투부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은 ‘울보 권투부’(2015)를 만들었고, 일본 방송사에서도 6~7년간 일했다. 올해 초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 이후 “카운터스 앞에서 어깨 펴고 다녔다”는 이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오토코구미 소식을 물었다. 혐오표현금지법 제정 이후 오토코구미는 자진 해체했고, 다카하시는 지난 4월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17일에 동료 한 명이 한국에 와서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다들 너무 오고 싶어 합니다. 다카하시에게도 큰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보여주기로 약속했는데 너무 애석해요.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쩍벌남’ 자세로 같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을 텐데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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