쳉후이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 이야기’

거란의 매사냥을 묘사한 그림. 거란인은 '곤발'이 특징이다. 청나라 만주족이 가운데 머리만 남겨서 땋아두는 '변발'을 한다면, 거란인은 가운데 머리를 다 깎고 변두리 머리카락으로만 머리는 장식하는 '곤발'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거란만 쏙 빠졌다. 부상하는 중국의 제국적 행태에 대한 반감이 중화(中華)주의에 대한 불쾌함으로 연결되면서 유목민족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칭기스 칸으로 대표되는 몽골, 청나라 만주족의 여진은 이제 여러모로 다양하게 조명된다. 준가르 같은, 다소 낯선 이름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범주 안에서 논의된다.

그런데 정작 거란은 없다. 발해를 멸망시킨데다, 몇 차례나 고려를 침범했으니 영 껄끄러워 그런 것일까. 서희의 외교술과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띄우려다 보니 지나치게 비하된 감은 있는 것일까. 어쨌든 동북아시아의 패자였던 만큼 거란은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단적으로 고려의 대장경은 요나라 대장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 이야기’는 이 공백을 메워주는 책이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 등 고려시대 전공자들은 요나라 유적 답사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발견, 번역한 책이 이 책이다. 중국 국영 CCTV가 방영한 정통 역사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 최신 연구 성과를 집어 넣되 서술은 일화 중심으로 술술 재미있게 읽히게 되어 있다.

가령 거란은 왜 거란인가. 거란은 유목민족 말로 단철(鍛鐵)을 뜻한다. 아주 단단한 쇠붙이를 상징으로 감은 것이다. 거란은 나중에 여진족의 완안아골타에게 멸망 당하는데 완안아골타는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짓는다. 이유는 단철은 단단하지만 녹이 슨다는 데 있다. 단철의 거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녹 슬지 않는 쇠, 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 이야기
쳉후이 지음ㆍ권소연 등 옮김
네오 발행ㆍ228쪽ㆍ1만3,000원

요나라 건국자는 야율아보기인데 이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초원을 나는 숫매’라 한다. 거란, 여진 등 북방 유목민족은 모두 매사냥을 최고의 스포츠로 즐겼다는데, 그게 걸맞는 이름이긴 하다. 참고로 칭기스 칸으로 알려진 ‘테무진’이란 이름의 뜻은 ‘초원을 달리는 말의 눈빛’이다. 유목, 기마민족의 냄새가 듬뿍 배어있는 이름짓기다.

유목민족 냄새가 더 듬뿍 배어 있는 것은 수도 문제다. 요나라는 공식 수도는 상경이었다. 그러나 그건 형식상 수도였다. 실제 수도는 ‘날발’이라는 모임이었다. 모임이 수도라고? 진짜 그랬다. 초원 민족답게 늘 이동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계절별로 한차례씩 별도의 장소에서 황제와 신하들의 모두 모이는 날발이 사실상의 수도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곳곳에 등장하는 ‘철의 여인’이다. 야율아보기의 부인으로 순흠황후라 불리는 술률평 이야기는 전율을 자아낸다. 여성임에도 별도의 군대까지 지휘했을 뿐 아니라, 야율아보기 최고의 참모였고, 남편이 죽자 옛 권신들을 모조리 순장시킨 냉혹한 정치인이었다. 부인인 당신부터 순장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을 듣자 그 자리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 남편의 묘에 던져 넣은 뒤 이것으로 갈음한다 기염을 토한 인물이기도 했다. 다른 한 여성은 마침내 송나라를 무릎 꿇리고 요나라의 전성기를 만든 6대 황제 성종의 어머니 소태후다. 유목민족다운 활달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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