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회의, 2022 대입 권고안 제시

정시 비율 미정, 일부 과목 상대평가
시민공론화위 조사결과와 큰 차이 없어
“대입제도를 의제로 올린 게 잘못” 지적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부에 보낼 2022학년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로부터 현 중3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이송안)’을 넘겨 받은 게 지난 4월 11일. 당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시민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7일 김 부총리가 국가교육회의에서 받아 든 건 곳곳이 비어있는 맹탕 답안지뿐. 김 부총리는 4개월을 그대로 허비한 채 원점에서 다시 최종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가교육회의가 이날 공개한 대입개편 권고안 내용은 크게 3가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위주 전형 비율은 정하지 않되 현행보다 확대하고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며, ▦수능 일부 과목 상대평가 원칙을 유지하면서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 대상에 포함하도록 교육부에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3일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은 공론 조사 결과에 더해진 것은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라는 주문뿐이다. 그 동안 수능전형이 중심이 된 대입 정시모집 확대 여부를 놓고 사생결단 식의 찬반 갈등을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공론화위도, 국가교육회의도 해법 도출에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심지어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교육부에 (전형) 비율을 정하라 마라 할 권한이 (국가교육회의에) 없다”고 했다. 수능 전형으로 뽑을 구체적 수치를 못박을지 말지, 폭탄은 교육부가 떠안으라는 의미다.

대입개편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31일 섣불리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밀어붙였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김 부총리 스스로 새 대입안 확정을 미룬 지 1년 만이다. 입시 개혁에 ‘공론화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입제도를 국가교육 차원에서 다루는 의제로 올린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 권고 사항. 그래픽 송정근기자
‘공론화 꼴찌’가 교육부 결론되나

공론화 만능주의에 빠져 제 발등을 찍은 ‘김상곤 교육부’는 이제 최종안 발표까지 불과 2, 3주 남짓한 시간에 1년 전보다 훨씬 격해진 교육 민심을 누그러뜨릴 묘수를 찾아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김 부총리는 국가교육회의 브리핑 직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공정한 입시를 갈망하는 국민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수능 전형을 늘리라는 것이 국가교육회의가 내린 거의 유일한 판단인 만큼 2022학년도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시 비중 확대가 점쳐진다. 관건은 확대 비율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시민참여단 490명 응답을 평균 내 수능전형 적정 선발비율을 39.6%으로 산출했다. 2020학년도(19.9%)와 비교해 20%포인트 가까이 오른 수치이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비율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가 가진 자료를 최대한 검토했는데 일정 비율을 정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교육부가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공을 넘겼다. 그는 다만 “평균값이 아닌 최저선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30% 안팎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기준이 적용될 경우 2015학년도(31.6%)와 비슷한 ‘과거로의 회귀’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참여단 선호도 조사에서 4개안 중 꼴찌(37.1%)를 차지한 ‘변형된 3안(대학자율성 보장 및 정시 소폭 확대)’에 가깝다. 실패한 공론화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구체적인 비율을 제시하기보다는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전형 확대를 유도하는 정도의 정책을 펼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능 평가방법은 현행 틀을 유지할 전망이다. 영어ㆍ한국사는 절대평가, 국어ㆍ수학ㆍ탐구 영역은 상대평가를 적용하는 식이다. 절대평가 전환이 권고된 제2외국어/한문은 비중이 미미해 전형 방식을 뒤바꿀 만한 파급력은 없다는 평가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도 대학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져 학생부위주 전형의 변별력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뒤죽박죽된 교육정책

교육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끝내 2022학년도 전면 시행이 무산된 수능 절대평가 때문이다. 정부는 원래 2015 개정교육과정으로 배우는 현 고1부터 수능 절대평가를 적용할 구상이었다. 새 교육과정은 과정 중심 평가와 창의ㆍ토론형 수업으로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게 핵심이다. 문제 풀이와 줄 세우기를 근간으로 하는 상대평가는 입시제도로 부적합하다. 그러나 수능 점수의 위력이 살아 있는 정시확대ㆍ상대평가로 결론이 나면서 당분간 학교 수업과 입시 준비가 따로인 상충ㆍ모순의 교육정책이 공존하는 뒤죽박죽의 상황이 됐다.

학생ㆍ학부모와 교육단체들이 성향을 떠나 한 목소리로 교육부에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것도 이 지점이다. 중1 아들을 둔 학부모 최미선(38)씨는 “정부정책의 신뢰도가 이렇게 바닥수준이라면 자녀가 고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좋은교사운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과 김 부총리를 경질하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예 교육현장이 정부정책의 지향점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반응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ㆍ외국어고를 ‘특권 교육’의 상징으로 치부하고 폐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정시의 문이 넓어지면 내신에 불리하고 수능에 강한 이들 학교 학생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한 진보교육계 관계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공론화 발목에 잡혀 진보정부의 대입정책이 이전 보수정부 때보다 후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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