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세기 전 세계의 격변을 함께 한 노인 알란은 자신의 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는다. 또 다시 모험에 나서는 알란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 연극열전 제공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대학로 자유극장ㆍ9월 2일까지
서현철 오용 장이주 양소민 김도빈 손지윤 주민진 권동호 이형훈 출연
김이선 작ㆍ김태형 연출
줄거리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 노인 알란은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 양로원 창문을 넘는다. 버스터미널에서 예의 없는 청년의 트렁크 가방을 충동적으로 들고 버스에 오른 알란은 그로 인해 갱단에게 쫓기게 된다. 이 가방이 갱단의 돈 가방이었기 때문. 양로원을 탈출해 남은 인생을 즐기려던 알란은 평생 좀스러운 사기꾼으로 살아온 율리우스, 수십 개의 학위를 거의 딸 뻔했던 베니, 코끼리를 키우는 구닐라 등 알란 만큼이나 구제불능인 인물들과 함께 모험 같은 여행을 하게 된다. 갱단과 그 뒤를 쫓는 경찰까지 알란의 자취를 밟으며 코믹한 여정이 펼쳐진다.

이와 더불어 알란이 태어난 1905년 5월 2일부터 2005년 5월 1일까지 전세계 곳곳에서 알란이 겪은 일들이 교차해 보여진다. 전쟁과 냉전으로 모든 나라가 격변을 겪은 순간마다 사실은 알란이 있었다. 폭탄 제조 기술과 남다른 배짱을 지닌 알란은 우연히, 또 우연히 스페인, 미국, 중국, 이란, 러시아, 북한까지 종횡무진하며 각국 정상들과 술 친구가 된다. 이야기는 이념이나 종교, 사회적 통념 등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알란의 삶을 함께 하는 여정과 같다.

우연히 갱단의 돈가방을 훔치게 된 알란은 자신 만큼이나 구제불능인 인물들과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연극열전 제공

2009년 출간된 후 전세계 35개국에서 1,000만부 이상 팔린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연극에서는 소설 속 100년의 역사 중 주요 에피소드를 압축했다. 연극으로는 짧지 않은 150분 동안 공연이 이어지지만, 무대 위에 차려진 기상천외한 해프닝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극에 빠져들 수 있다.

원작에는 없던 알란과 고양이 몰로토프의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몰로토프를 잃은 뒤 양로원에 가게 된 알란은 평생 몸에 지니고 있던 성냥갑까지 빼앗긴다. 양로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었다. 몰로토프의 한 마디에 알란이 창문을 넘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출

원작의 텍스트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관건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보다도 과연 이 이야기를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하느냐였다. 특수 장치가 아닌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연출 방식으로 ‘연극적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소품과 내레이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배우, 제작진이 ‘캐릭터 저글링’으로 표현한 일인 다역 연기, 이름표 붙이기 등 연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의 세계가 펼쳐진다.

배우들은 평균 12개의 역할을 맡는다. 어린 알란, 청년 알란, 노인 알란이 됐다가 순식 간에 다른 인물이 되고 혹은 동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연극열전 제공

가장 주목할 점은 역시 캐릭터 저글링이다. 알란이 100년 동안 만나 온 인물들뿐만 아니라 코끼리, 강아지, 고양이까지 60여명의 등장 인물을 단 5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5명의 배우는 모두 ‘알란’이 된다. 100세 알란, 알란1, 알란2, 알란3, 알란4가 돼 어린 알란, 청년 알란, 중년 알란으로 분한다. 배우들은 동시에 다른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인 아론손 반장,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김일성, 아인슈타인, 코끼리 등으로 순식간에 캐릭터를 바꾼다. 배우들은 성별과 나이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혹은 동물)을 연기 하기 때문에 여성 배우도 당연히 알란이 된다. 관객을 헷갈리지 않게 하는 건 이름표와 직접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배우들의 상황 설명이다.

커다란 세계지도 모양의 무대장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서랍장 세트를 열고 닫으며 나라를 옮기고, 무대 위 한 켠에 마련된 전광판이 현재 우리가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를 알린다. 알란이 들르는 나라는 각국의 전통춤과 그 나라 언어로 외치는 ‘건배’로 알 수 있게 했다. 154개의 소품으로 시공간을 넘기고 받는 연출을 보며 ‘이보다 더 연극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카포네 트릴로지’ 등 톡톡 튀는 연극을 만들어 온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가 콤비가 또 한 번 의기투합했다. 김 연출가는 즉흥적으로 극을 만들어 가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관객 모두를 극 안으로 끌어 들이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 새로운 형식의 연출을 지속해서 선보여 왔다. 이들조차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무대화는 정말 힘들었다고 밝혔다.

주연

무대 위 배우들은 “작가와 연출이 저글링을 시키는 등 정말 힘들게 한다”며 관객에게 호소한다. 객석은 웃음이 터지지만, 배우들의 노고는 말뿐이 아니다. 정말 쉴 새 없이 캐릭터를 주고 받는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해 온 무대 배우들이 ‘이 어려운 걸 해낸다.’ 10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오른다. 영화와 방송에서도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서현철의 능청스러움이 이번 작품에서도 발휘된다.

강추

앉은 자리에서 100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세계일주를 연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영상매체와는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비추

책의 방대한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전통적인’ 연극을 기대한 이에게는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