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복무하지 않는 독립적 지식인상을 창조해 낸 작가 최인훈이 지난달 23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뉴스1

서양 정치사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 저자인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이는 증조부였다. 그의 증조부 라무아뇽 드 말레제르브(1721~1794)는 1775년 루이 16세가 즉위하면서 내무장관에 기용된 인물. 말레제르브는 내각에 있으면서도 ‘인민의 자치’를 옹호할 정도로 대담하게 전제 왕정을 비판했다. 개혁정치가 좌절되면서 이듬해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는 말년의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1792년 국민공회(혁명의회)가 소집돼 왕정이 폐지되자 루이 16세의 처형 여부를 놓고 프랑스 내부는 시끄러워지는데, 이 때 왕의 간청으로 그는 의회에 나가 불운한 왕을 변호한다.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성난 인민들에 붙잡힌 그는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말로는 불행했지만 토크빌은 “나는 말레제르브의 증손자이다. 말레제르브는 왕 앞에서는 인민을 그리고 인민 앞에서는 왕을 옹호했다…그의 위대함은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또 결코 잊을 수도 없는 본보기다”는 글을 남겨 증조부에 대한 외경심을 표현했다.

다소 맥락 없이 프랑스 혁명기의 한 지식인을 떠올린 건, 말레제르브 같은 인간형 창조에 몰두했던 작가 최인훈의 부재가 비로소 실감나기 때문이다. 지난 주 별세한 최인훈은 1960년 발표한‘광장’으로 문명을 얻었지만, 대중 작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전개나 잘 짜인 플롯은 없고, 실험적 기법을 사용한 지독한 장광설로 가득한 그의 소설은 오히려 책 읽기의 인내심을 테스트한다는 편이 좀더 솔직할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인훈 작품을 읽고 나면 남는 묵직한 여운은 오롯이 그가 창조해낸 문제적 인물들 덕분이다. ‘광장’의 이명준과 ‘회색인’, ‘서유기’에 등장하는 독고준이 바로 그들. 이들은 한반도에 두 개의 정권이 수립되는 시기에 북쪽에서 혼란스러운 입사(入社)의 시기를 보내다가 남으로 건너온 지식인(이들은 철학도 혹은 정치학도다)으로, 작가의 분신 같은 존재다. 북쪽에서는 부르주아 근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자아비판을 당하고, 남쪽에서는 월북한 부친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의 고문에 시달리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이명준, 그리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처지이지만 어떠한 집단에 대한 참여도 거부하고 홀로 문명ㆍ민족ㆍ이데올로기 같은 관념 탐구에 몰두하는 독고준은 독립적 지식인의 독특한 상(像)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인 고(故) 김치수의 평가를 빌리자면 “문학의 속성이 체제에 의해 수렴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라면 최인훈의 주인공은 그런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가 집단에 반영이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자신의 삶을 이루”는 인물이다.

단언컨대 최인훈의 화두는 권력에 맞서는 독립적 지식인을 북돋우는 일이었다. 특히 전쟁을 겪고 냉전을 몸으로 통과한 작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남북 양쪽의 체제는 지식인을 억압하는 절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남북의 체제대결이 끝난 지도, 남쪽에 민주화가 이뤄진 지도 30년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체제는 남쪽의 지식인을 얽어 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쪽의 지식인들이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냐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예컨대 정권이 바뀌면 이견을 말하려는 이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입을 다물라는 압력을 주고, 망신을 주고, 심지어 자리를 빼앗는 행태는 보수건 진보건 반복해 오지 않았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대자의 목소리를 불편해 하고 그들의 입을 침묵시키고 싶어하는 건 권력의 속성이다. 진영과 상관 없이 부당한 억압에는 발언하는, ‘나는 회색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인을 격려하는 일, 그것이 2018년 오늘 지식인 작가 최인훈을 읽어야 하는 이유 아닐까.

이왕구 국제부 차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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