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설치 거절 임대아파트 경비원
마음 아름다우나 안전한 노동도 중요
저소득층 에어컨 구입비 지원 검토를

“우리는 공감을 억누르거나 정신적으로 차단하거나 행동으로 옮기기에 실패할 수는 있지만, 사이코패스와 같은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른 여러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긴 줄기에서” 이어받은 “고도의 상호 의존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조절할 수 없는 자동적인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법원행정처 일부 판사들이 국민을 “이기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과 달리 진화생물학자는 이타성을 인간 본성의 일부로 여긴다. 굳이 학술적인 해석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한다.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은가.

부산의 영구 임대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다 일부 주민이 반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입주민도 에어컨이 없어 힘든데 경비실에 웬 에어컨이냐는 마음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나, 시공사에서 무상으로 설치해주겠다는데 몽니를 부릴 것까지 있나 싶다.

그런데 마침 부산의 다른 임대아파트에서 똑같이 시공사가 놓아주겠다는 에어컨을 이번엔 경비원들이 거절해 화제가 됐다. “꼭대기 층 입주민보다 아파트 1층 경비실이 덜 덥다”거나 “입주민 대부분이 에어컨이 없는데 경비실에 떡 하니 설치하면 주민 마음이 어떻겠냐”는 이유였다. 주민의 어려움에 공감하려는 마음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뙤약볕도 피하기 어려운 1평 남짓 경비실에서 제복 차림으로 열풍만 붕붕 나올 선풍기에 의지하겠다는 결심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에어컨을 거부한 경비원들은 일터와 생활공간을 혼동하고 있다. 경비실 에어컨은 폭염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주어진 일을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필수다. 마음이야 아름답지만 에어컨 거부 행위를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무더위 쉼터’라고는 해도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나는 주민이 몰려 있는 마을의 파출소, 주민센터 에어컨은 어떻게 봐야 하나. 주민 반대로 에어컨 설치가 어렵자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는 다른 임대아파트 경비원들은 또 뭐가 되나.

에어컨 설치에 반대한 경비원들의 공감은 소중하지만 주민과 고통을 함께하는데 머물렀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될지 모르나 그래도 절반의 슬픔은 남는다. 공감은 고통을 함께하는데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그 고통을 없애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책임을 경비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번 사례를 우리 모두 생명보호장치로서 에어컨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국내 에어컨 보유 가구 비율은 7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TV나 냉장고, 세탁기가 그랬듯 에어컨은 이제 사치품이 아닌, 선풍기나 마찬가지로 생활가전 제품이다. 가격과 전기요금이 부담돼 아직도 30% 정도의 저소득층이 구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선풍기만으로 폭염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에어컨 구입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여름 들어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30명에 육박한다. 이 숫자는 전국 응급실을 통한 온열질환자 표본 감시 결과이므로 실제 폭염의 영향으로 숨진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온열환자의 경우 5명 중 1명이 집안에서 병을 얻는다.

일본은 지난달부터 정부가 생활보호 수급 가구 가운데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 등 온열질환 예방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가구에 최대 5만엔(50만원)까지 에어컨 구입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전기요금 경감도 필요하겠지만 일본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우선 에어컨 구입 비용부터 지원했으면 좋겠다. 경비실에 마음 편히 에어컨 좀 놓게 말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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