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이되 극단 피한 포용의 정치인
노회찬流 삶과 정치 필요한 한국당
능력과 합리 갖춘 보수로 거듭나야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정이 26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빈소를 떠나 지역구민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경남 창원으로 출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에 대한 애도는 이념과 진영, 정파를 초월한다. 그가 한국 정치의 소중한 자산이었다는 의미이고, 그처럼 국민 마음에서 울림을 일으킬만한 정치인이 드물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 의원은 수미일관하게 약자와 빈자를 위해 헌신하고, 권력과 금력의 횡포와 부패에 단호했다. 빈한했지만 자신에게 엄격했다. 진보이되 극단을 경계했으며, 포용과 균형의 정치를 했다. 그런 그가 티끌 같은 흠결에 괴로워하다 불귀의 객이 됐으니 비통함이 큰 것이다.

노회찬 의원은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대중에 널리 알린 정치인이다. 정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춘 송곳 추궁, 노동과 복지를 존중하고 우선하는 자세, 명쾌한 대안 제시는 서민의 막힌 속을 뻥 뚫어 주었다. 시원시원하고 재치있는 비유와 입담은 진보정치 대중화에 소금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와 대체 불가할 것 같은 노 의원을 잃었으니 진보 진영의 상실감이 오죽할까.

여의도로 눈을 돌리면 정작 노 의원 같은 인물이 절실한 곳은 자유한국당이다. 지향 가치와 철학은 보수적이나 다른 것은 노 의원을 쏙 빼닮은 이가 있다면 무너진 보수 정치의 수선과 재건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하다. 보수가 그런 인물을 구하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보수 정권 9년간 한국당은 인재 육성이나 영입은커녕 권력과 이익을 좇는 패거리 정치로 국민의 버림을 받고 궤멸했다. 진보 정당이 목표와 지향점, 노선을 놓고 치열한 논쟁-생산적이든 비생산적이든-을 하며 역량을 키우고 노 의원 같은 인물이 배출될 수 있는 토대를 쌓아 온 것과 대조적이다. 오죽하면 지지율에서 정의당에 뒤졌을까. 보수 정치는 ‘그라운드 제로’에 놓여 있다.

‘보수 노회찬’은 거저 나오거나 길러지지 않는다. 치열한 고민과 뼈를 깎는 고통, 처절한 쇄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언감생심이다. ‘보수 노회찬’은 보수의 새로운 가치와 철학을 수립하고, 설득하고, 전파하고, 이해시켜 지지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핵심 열쇠는 현재로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쥐고 있다. 하지만 보수 정당의 추구 가치와 철학을 재정립하고 뿌리내리게 해서 수많은 ‘보수 노회찬’을 만들어 내기까지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당내 기반도, 공천권도 없는데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굴레는 두텁다. ‘폴리페서’로서 권력 의지가 강하다는 수군거림도 많다. 그러니 보수 혁신과 통합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혁신을 위해 인적 청산을 시도하다간 계파 갈등과 분열로 통합이 저해되고, 보수 대통합을 꾀하다간 혁신이 좌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퇴유곡(進退幽谷)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공법이 답이다. 취임 직후 국가주의를 거론해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부터 세운 것은 하수였다. 지금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보수의 대수술이 우선이다. 당 외부보다 내부를 향해 메스를 대는 것이 먼저다. 김 위원장은 국가ㆍ시장ㆍ공동체가 함께 돌아가는 ‘세바퀴 국가론’, 시장 우위를 보완할 ‘보충성 원칙’을 당의 새 정체성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당 내부의 동의를 끌어내고, 국민 마음을 얻을 정책으로 구체화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정책통 아닌가.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 자세는 유지하되 의도적으로 전선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노무현 정신’대로라면 정부 여당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당 내부 반발이 있어도 정부 여당과 협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손을 잡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보수가 ‘수꼴보(수구 꼴통 보수)’에서 ‘능보, 합보’(능력있는 보수,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국당이 산다. 그래야 수많은 ‘보수 노회찬’들이 몰릴 것이다. ‘진보 노회찬’은 보수 그 자체에 대해 결코 야박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도 ‘보수 노회찬’ 후보가 되기 바란다.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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