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봉제는 우리 미래에 걸림돌이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심한 연공서열 보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호봉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노조 보호를 받는 직장, 예컨대 공공부문의 호봉제는 직원의 동기부여나 기관의 생산성 측면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승진 욕심만 버리면 정년까지 높은 임금을 누리며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에 관계 없이 나이가 많아 더 높은 호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기도 하다.

노조 보호가 없는 민간부문의 호봉제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사용자가 정규직을 가급적 안 뽑거나, 뽑아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가급적 빨리 내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635명에게 물은 결과, 체감 퇴직연령은 평균 51.7세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기 퇴직은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자영업자 평균소득이 2000년대 이후 감소하는 배경 중 하나가 기업의 호봉제이다.

기획재정부도 그간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왔다. 지난 정부에서는 성과연봉제를 추진했으나 작년 대선 이후 이를 노사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했다. 그 후 119개 공공기관 중 97개 기관이 성과연봉제를 없던 일로 했다. 사실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일괄 도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었다. 공공부문에선 성과 측정이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호봉제로 회귀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성과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근속연수가 아니라 직무나 역량 등 다른 기준으로 연봉을 산정하는 것이 옳다.

기재부가 다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공공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자동 호봉 승급분을 줄이고, 상위 직책으로 승진 시 직무급을 높게 준다면 승포자(승진포기자)를 줄여 무사안일 타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노조의 반대이다. 노사합의에 의해 자율적으로 추진한다는데, 자발적으로 호봉제를 버릴 기관은 없다. 공공기관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호봉제는 경쟁의 부담을 없앨 뿐더러 자신의 평생소득을 확실히 예측 가능케 하는 제도다. 반면 직무급을 도입하면 평생 소득의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승진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과급을 도입하면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개인은 위험을 싫어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가르침이다. 평생 소득은 일정한데 불확실성이 커지면 노동자는 이를 소득이 낮아진 것으로 인식한다. 호봉제를 버리면 기관 생산성은 올라가나 노동자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합의로 추진키 위해선 호봉제를 버리고 직무급 혹은 성과급을 도입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기존의 경영평가 지표에 임금체계도 포함되어 있긴 하나 그것만으론 약하다. 또한 경영평가 성과급은 일회성인데 비해 임금체계 개편은 평생을 좌우한다. 대안으로 기관별 1인당 인건비 인상률을 임금체계 개편에 연동할 것을 제안한다. 호봉제를 유지하는 기관은 인상률을 제로에 묶고 직무급이나 성과급을 도입하여 호봉제 요소를 탈색할수록 인건비 인상률을 높게 하는 방식이다.

예산실은 기관별 인건비 총액을 중시하므로 인건비 나누는 방식을 개선했다는 이유로 총액을 올려 주는 방안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은 공공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개인에게 더 높은 보수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체계 개편으로 생산성이 더 높아진 기관에는 인건비를 더 주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이러한 논리는 임금체계만이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 도입 시에도 적용된다. 철저한 계약제로 생산성을 제고한 기관에는 1인당 인건비를 높게 주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개편은 꼭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그 바람이 정부와 민간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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