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 특히 파리 사람들이 휴가를 극성스럽게 떠나고 즐기는 통에 바캉스라고 하면 이름난 휴양지나 해수욕장에서 그럴듯하게 즐기고 오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바캉스라고 하면 어딘가 그럴듯한 산이나 바다에 다녀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2003년에 발간된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재운)은 바캉스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튼 ‘바캉스’란 프랑스어는 우리말 ‘휴가’나 ‘피서’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나지막이 “바~캉~스”라고 발음해보라. 목젖이 열리며 콧소리가 난다. 간지럽다. 마음은 벌써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다.

또 그 시즌이 돌아왔다. 일 년에 딱 한 차례, 길어봤자 달랑 일주일. 갑이든 을이든 백수든 누구나 이 미션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사실 인문학적이다.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왔는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비우는 것’이라는 의미다.

바캉스라는 말을 만든 프랑스 사람들의 휴가문화는 사실 유난스럽지만 부럽기 짝이 없다. 프랑스는 1936년 세계 최초로 근로자 유급휴가를 법제화한 나라다. 1985년부터 5주의 유급휴가가 보장됐다. 불어에는 바캉스가 만들어낸 특이한 단어들이 있다. 쥐에티스트(juillettiste)와 우티앵(aoûtien). 쥐에(juillet)는 7월, 우(août)는 8월이다.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어미를 붙였다. 즉 7월파, 8월파다. 7, 8월의 초입은 ‘그랑 데파르(grand départ)’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대출정’이라 해야 할까.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이 양떼 같다 해서 언론은 ‘라 트랑쥐망스(la transhumance, 이동목축)’라고도 표현한다.

그들은 어디로 그리 떠날까. 땅덩어리가 유럽에서 가장 넓어서 갈 곳도 많지만 우리처럼 관광지 위주로 몰리지는 않는다. 산악지대나 해변 도시, 강변, 시골 별장, 전원, 캠핑장 등 전국 곳곳에 흩어진다. 검색해보면 지도를 뒤덮을 만큼 수많은 캠핑장은 거의 완벽한 시설에 하루 2만~3만 원 수준이다. 그럼 아이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대폭 지원하는 다양하고 싸고 긴 기간의 방학캠프가 있다. ‘콜로니 드 바캉스’라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1500만 명 정도의 청소년이 3만 개가 넘는 이 캠프에 참여한다. 참가비는 부모의 소득별로 내는데 열 배 이상 차등을 둔다. 우리네 바캉스는 아이가 주인공이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런 바캉스를 누릴 수 있는 건, 삶의 질에 대한 철학과 휴식의 가치에 국민이나 국가의 생각이 확고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해운대 해수욕장 100만 피서객 뉴스가 멀지 않았다. 전 세계에 이런 해수욕장 풍경이 어디 있을까. 큰 해수욕장은 보통 10만~20만, 계곡마다 수만 명, 강원도의 힘은 부친다. 리조트나 펜션이나 먹거리는 평소의 두 배 가격. 우리 바캉스는 군중 속 인증샷이자 대중투쟁이다. 휴가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자는 말은 많았지만 우리 사회의 휴가 시스템은 7말8초로 견고하다. 법원도 이 기간에만 휴정한다. 학원도 이때만 셔터를 내린다.

우리 바캉스는 왜 끝나지 않는 전쟁일까. 촛불혁명만 혁명이 아니다. “진짜 혁명이 필요한 건 바캉습니다!!!” 나는 목 놓아 외치고 싶다. 전문가가 아니니 해답까진 묻지 마라. 분명한 건 그냥 편히 잘 쉬고 싶다는 것뿐. 이도저도 안 된다면 내 사고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충전은 어차피 틀렸으니 최소한 방전이라도 말아야지. 우리는 콩나물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휴가’ 보내시길. “본느 바캉스(Bonnes vacances)!”

한기봉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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