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방향 선회에 진보진영 반발
좌우에서 공격받던 노무현 때 데자뷔
판 깨지 말고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 가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을 보면서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방향을 트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은 혁신 성장에 중심 자리를 내줬고 규제완화가 전면에 부각됐다. 요즘 경제부처 회의 대부분은 혁신 성장과 규제완화에 맞춰져 있다. 정부 주요 인사들의 화법도 이전과 달라졌다. 문 대통령이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보다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다. 원칙주의자인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 변화는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갈등과 고용부진, 내수악화에 수출, 성장률 등 모든 경제지표에 경고등이 켜졌다. 문 대통령은 특히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아 소득불평등이 집권 후 더 악화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민 대통령’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다.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전환은 ‘양날의 칼’이 아닐 수 없다.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당장 문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진보진영에서 개혁 후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사회ㆍ경제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게 일군의 진보 지식인들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와 완전한 결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충고도 아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여차하면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진보 지식인들의 지지 철회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소득주도 성장의 완전 폐기와 재벌개혁 철회를 요구하는 보수 진영은 ‘미세 조정’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힘을 실어 준 중도세력은 ‘성과’가 시원치 않으면 언제든 돌아서게 돼 있다. 여기에 이념적 동조세력인 진보층이 등을 돌리면 급격히 허물어질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을 놓고 참여정부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출범 2년 차부터 보수ㆍ진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양상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노동계, 전교조와 정책 갈등을 빚었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로 사실상 결별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의 최저임금 공약과 주 52시간 근무 유보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과 전교조 합법화 논란이 그렇고 재벌ㆍ부동산 개혁 후퇴 비판도 그때와 비슷하다.

사실 문 대통령은 이런 국면을 진작에 예견한 바 있다. “다음에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섰을 때 어떻게 될까. 보수 진영은 개혁과 복지한다고 공격하고 진보ㆍ개혁 진영은 제대로 못한다고 공격하고, 그렇게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정부 역시 참여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운명’, 457P)

진보경제학자 출신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 때문에 현 정부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진보 진영을 비판한 것은 문 대통령의 심정 그대로일 것이다. 경제에서 실패할 경우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는 국정동력 약화로 이어져 결국 총선과 차기 대선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출한 것이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최우선인 정부로서는 현실에 맞춘 유연성과 궤도 수정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하다.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특권과 반칙을 막는 지속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 지식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같은 진보 진영이라 해도 정부와 시민사회 세력의 입장이 늘 같을 수는 없다. 다만 두 세력의 대립으로 판이 깨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참여정부의 개혁 실패가 반복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이런 주장을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현 정부 사람들 말대로 짧게는 6개월, 길게 잡아도 1년 내에 성과를 못 내면 무능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에 올인해 실력으로 평가를 받기 바란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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