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께서는 현재 국회의장의 이름을 아십니까?’ 이 질문은 응답자의 정치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용되는 설문 문항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장과 같은 고위직 정치인의 이름을 정확히 적을 수 있는지에 따라 응답자의 정치 지식을 평가할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만큼 국회의장이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중요한 직위임을 암시한다.

아마도 지금 한국 국민은 상당수가 정답을 쉽게 맞힐 것으로 생각된다. 신임 국회의장이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3일 선출됐다는 시기적 측면도 있지만, 신임 의장이 밝힌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가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개헌, 선거제도 개편, 국회 개혁 등 세 가지 중요한 분야 모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이 주효한 것 같다. 특히 개헌에 대한 희망이 희석된 상태에서 ‘개헌이 돼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개혁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동안 정부의 입김에 주눅 들었던 국회가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키우는데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기 초기 국회의장답게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 준 것 같다.

그러나 정치 개혁에 대한 국회의장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다수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이들은 이전 국회의장들도 이미 이 정도의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적이 많다고 지적한다. 다만 임기 초반 표명된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임기 초반의 목표를 실현한 사례는 드물다는 시각이다. 의지가 개혁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개혁을 추진하려는 시점의 문제를 지적한다. 20대 국회 임기 중반인 지금은 국회의장이 소모적인 개혁 논의보다는 산적한 법안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할 때라는 것이다. 당파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개헌과 같은 논의를 지금 진행하는 것은 국회 운영 및 정치 전반에 대한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장의 위상에 대한 지적도 많다. 한국 국회의 국회의장이 주도적으로 국회를 운영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있냐고 반문한다. 하나의 법안을 두고 벌어지는 국회 내 정당 간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 역할도 해내지 못했던 국회의장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 시각이다.

국회 내 정당정치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하지 않고는 위와 같은 회의적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 국회의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회 내 역할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신임 의장의 입장은 과거와 두 가지 차이점을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국회의장이 단순히 국회 내 조정자가 아닌 한국 의회 정치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개헌은 정부보다 국회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일 것 같다. 그동안 정부의 주도권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행태에서 벗어나 개헌이라는 이슈를 누가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국회의장이 역할을 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 개혁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정치 개혁의 요체는 개헌보다는 선거제도’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치 개혁을 포괄적으로 뭉뚱그려 논의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정치 개혁과 관련된 사안들의 선후를 규정한 구체적인 절차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국회 구성을 재정비하는 것이 개헌보다는 일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와 국회의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일정한 순서에 따라 개혁을 진행하겠다는 이러한 주장은 실패한 과거 경험과는 차별적이다. 이제 이러한 의지가 한국 사회 내 정치 개혁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데 기여할지 두고 볼 일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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