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축음향 전문가 김남돈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김남돈 삼선엔지니어링 대표가 음향 설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공연 장르, 객석 숫자에 따라 공연장 설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해외의 경우 공연장 운영 방향을 먼저 정하고 설계에 들어가지만, 국내는 일단 공연장을 짓고 운영 방향을 논한다. 순서를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건축 천재’로 불린 고 김석철(1943~2016) 명지대 석좌교수가 스승 김수근을 누르고 예술의전당 설계 공모에 당선된 건 1984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인 1988년 음악당과 서울서예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핵심 시설인 오페라하우스는 1993년 개관했다. 오페라, 연극, 오케스트라, 실내악 등 서로 다른 공연양식에 맞춰 설계된 5개의 전용극장이 들어선 국내 최초의 ‘복합예술문화공간’을 설계하며 김석철은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사십대 창창했던 김석철이 예술의전당을 설계했을 때 개별 공연장의 음향 컨설팅을 담당한 건 스물아홉의 청년, 지금은 국내 건축음향설계 1세대가 된 김남돈(59) 삼선엔지니어링 대표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 대표는 “(개관 당시) 국내 기술 수준이 미천해 영국 설계 컨설턴트의 자문을 우리 현실에 맞추는 소통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공연장 음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리 울림입니다. 음의 선명도와 울림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클래식 연주회와 연극은 한 공간에서 할 수 없거든요. 이런 특성을 무시한 다목적홀은 어느 공연도 만족 시키지 못하는데, 그걸 탈피해 장르별 전용 극장을 만든 게 예술의전당이죠.”

“외국 자문의 소통 창구”였던 김 대표는 콘서트홀(2005년) 오페라극장(2011년) 리노베이션 공사와 IBK챔버홀(2011) 개관 때 음향 설계를 직접 담당했다. 전문가들 사이에 최고의 공연장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을 비롯해 고양아람누리, 대구콘서트하우스, 계명아트센터, 엘림존 콘서트홀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음향설계사 김남돈 건축음향연구소 대표. 신상순 선임기자

공연장 음질을 논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충분한 적막(寂寞)이다. 음량을 확보하고, 작은 소리와 낮은 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소음이 적어야 한다. 주파수별로 소음 정도를 나눠 계산한 ‘NC(노이즈 크리테리아)지수’를 공연장 소음 기준으로 삼는데 교회나 학교가 NC25~30, 도서관 영화관이 NC30~35 정도다. 김 대표는 “유럽의 경우 NC15 이하를 좋은 공연장으로 보는데 이 기준에 드는 국내 공연장은 인천아트센터,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 정도”라고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적절한 잔향, 악기에서 나온 음이 벽에 반사돼 연주 후에도 실내에 남아 울리는 소리다. 잔향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음과 음이 섞여 소리 명료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공연 장르와 극장 크기에 따라 적절한 잔향이 다르다. 종교 음악의 최적 잔향 시간이 3초로 가장 길고 오케스트라 협연이 2~2.2초, 실내악은 1.3~1.6초 선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잔향은 2.1초, IBK챔버홀은 1.5초로 웬만한 유럽의 콘서트홀에 뒤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잔향 0.5초가 늘면 5배가 더 울리는데, 예술의전당 개관 때 다목적홀에 익숙한 국내 관객들이 음악당 소리가 ‘너무 울린다’며 비판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은 국내 최초로 잔향 2.0시대를 연 공연장인데 당시 한국일보도 ‘목욕탕 소리’라고 썼다”고 웃었다.

건축의 3대 요소인 빛, 열, 소리 중에서 김 대표가 소리를 전문 영역으로 파고들게 된 건 대학 졸업 후 지하철 공사를 담당하면서부터다. “현장 주변 소음, 진동 때문에 민원이 많았어요. 이걸 해결해보려고 1984년 일본으로 견학을 갔는데, 신주쿠 서점 ‘키노쿠니아’에 전문 코너가 있을 정도로 음향 설계가 정식 학문으로 정립돼있더라고요. ‘이 분야 좀 해봐야겠다’ 싶던 찰나에 제가 있던 회사(한솔기술)가 예술의전당 공사에 참여하게 된 거죠.”

물론 “해외 공연장을 벤치마킹했던 (음향 설계) 불모지”에서 음향 설계 전문가가 되는 건 만만치 않았다. 김 대표가 독립해 삼선엔지니어링을 세운 건 1990년. 이때부터 돈 버는 대로 해외 음향 건축 서적을 사 읽고 유명하다는 공연장을 답사했다. 해외 출장 횟수는 한 해 평균 20회. 20여년을 가다보니 어느 해는 “항공권 지출이 너무 많다”며 세무 조사도 받았단다. 김 대표는 “전세계 출장 갈 때마다 유일하게 사오는 게 책인데 이렇게 20여년 간 모은 책이 2만 권”이라면서 “건축사무소 직원 17명 중 2명은 건축 서적, 논문 번역만 전담하는 인력”이라고 말했다. 2014년 이 책들을 모아 충남 아산에 사립 도서관 ‘371 위드 북스(with books)’도 지었다. 자비로 운영하는 도서관을 은퇴 전 대학과 연계해 건축 음향 학생들에게 무료 개방하는 게 꿈이다.

김남돈 건축가가 세운 건축음향도서관 '371 with books'. 20여년 간 해외 공연장 순례를 하며 모은 2만여권의 건축서가 꽂혀있다. 김남돈씨 제공

읽은 책과 해외 공연장 순례 기록을 모아 2010년부터 책으로 펴냈다. ‘건축음향설계 공연장 순례-한국’과 ‘세계의 공연장 80선’에 이어 최근 펴낸 책은 ‘건축음향설계 공연장 순례 일본편’이다. 공연장 전경 사진, 연혁은 물론 설계도, 개관 당시 일본의 사회사와 개관 공연 정보까지 촘촘하게 담은 공연장 백과사전이다. “건축 음향 설계 1세대가 30년 됐는데, 아직 유명 연주홀은 해외 인력에 많이 의존합니다. 그게 참 미안해요. 우리 땅에 짓는 공연장, 우리 손으로 지어야죠. 제가 바닥부터 일을 배워 후배들에게 참고할만한 자료를 남겨주고 싶어요.”

김남돈 건축가가 세운 건축음향도서관 '371 with books'. 20여년 간 해외 공연장 순례를 하며 모은 2만여권의 건축서가 꽂혀있다. 김남돈씨 제공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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