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법원행정처 ‘언론사 홍보전략’
상고법원 추진 위해 변호사 설문 제안
지역별 가중치 등 통해 조작 계획 드러나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던 상고법원과 관련해 왜곡된 설문조사 결과로 여론몰이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의 상고법원 추진 근거로 삼기 위해 여론조작도 서슴지 않았다는 의미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 법원 등에 따르면 2015년 4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과 기획조정실이 함께 작성한 ‘특정언론사 홍보전략’ 문건에는 전국 변호사들을 상대로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하는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건은 앞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검찰에 임의 제출한 410개 문건에는 포함됐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는 상고법원 설치에 유리하도록 설문조사 시기와 방법 등을 조작해 의도한대로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했던 점이다. 설문조사 기간을 공지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상고법원 설치)가 나오면 바로 조사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당시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던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이 설문의 공정성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집단적으로 설치 반대 의견을 쏟아낼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설문 문항을 법원행정처 측이 작성하되 상고법원이 설치됐을 때 변호사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부각시킬 것을 제안했다.

또 법원행정처 측은 의도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지역별로 가중치를 매겨 차별화하는 수법도 동원하려 했다. 당시 서울지방변호사회(변회)는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 입장을, 부산ㆍ울산ㆍ경남지방변호사회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행정처는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수가 전국 변호사의 70% 넘는 점을 이용해, 지역별 가중치를 둬 반대 입장인 변호사 의견 반영 비율을 낮추려고 한 것이다. 지역별 편차 보정방법은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변호사들의 이메일을 통한 설문조사 방식에 대해 변협이 개인정보 취득 경위를 문제 삼을 것도 우려해 변협 회보 등에 게재된 회원 정보를 이용한 것이라는 해명까지 미리 준비했다.

법원행정처는 이같이 왜곡된 설문조사 결과를 특정 언론사에 제공해 유포할 계획도 세웠고,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언론사가 설문조사를 한 것처럼 제안했다. 그러면서 조사 결과 찬성 의견이 60% 이상 나오면 기사화하지만, 50% 이하로 나올 경우 결과를 공표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설문 조사 비용은 특정언론사에 상고법원 홍보 광고를 내는 것에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일반재판운영지원 일반수용비 중 사법부 공보홍보 활동 지원 세목 9억9,900만원 편성’이라고 구체적으로 기재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여론 조작을 기획하면서까지 상고법원을 설치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여론조작 계획이 실제로 이행됐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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