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투혼의 준우승, 내전 아픔 씻어

박지성 “가장 매력적인 축구 선봬”
국민들 “역사 만들었다” 자부심
서로 끌어안고 위로… 밤새 파티
크로아티아의 시메 브르살리코(오른쪽)가 16일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팀 동료인 프랑스의 앙투안 그리즈만을 축하해주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이렇게 패하고도 많은 박수를 받은 국가가 있을까.

인구 415만 명의 소국 크로아티아가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패자로 기억됐다. 크로아티아는 1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2-4로 졌다. 상대보다 하루를 덜 쉬고, 16강과 8강 그리고 4강까지 연장 승부를 펼쳐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수비에 치중하기보다 당당히 맞서 싸웠다.

영국 가디언은 “작은 국가지만 큰 심장을 가졌다”고 크로아티아의 투혼을 높이 평가했다. 선수 시절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로 통했던 박지성(37) SBS 해설위원 역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보여준 팀”이라며 “정신력, 자세, 경기력까지 모두 완벽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50)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시상식 종료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잘했다. 역사를 만들었다.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며 선수들과 라커룸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크로아티아 동화’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지만 축구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안겼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는 3년간 내전과 전쟁을 치른 상흔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번 대회 골든볼을 수상한 루카 모드리치(33)도 어린 시절 피란 생활을 했다. 또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소득이 낮고, 청년 실업률은 30%를 웃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기간 크로아티아 전역은 축제의 장이었다. 특히 결승전이 열린 이날은 자그레브 시내 메인 광장에 5만 명이 몰려 “우리는, 크로아티아” 구호를 외치며 경기를 지켜봤다. 시민들은 2-4 패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그리고 밤새 파티를 즐겼다. 영국 BBC는 “크로아티아 팬들은 결승에 오른 자체 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크로아티아에서 4주 간의 폭주가 끝났다”며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루카 모드리치를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기계공 미하엘 스타니치(28)는 “당신이 아름다운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를 키우는 소년이라고 생각해봐라”며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 후 “그런데 이틀 후에 그 강아지가 죽었다. 이게 내 기분”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교사로 재직 중인 마리자나 페레이라(26)는 “슬프지만 2등도 엄청난 성공”이라며 의미를 부여했고, 사업가 마토 무슬린(47)은 “챔피언이 되지 못했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의 여운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귀국 환영 행사 때 10만 명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준우승을 계기로 자국 축구 인프라 시설을 확충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4강 주역인 다보르 수케르(50) 크로아티아축구협회장은 ESPN과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크로아티아의 첫 번째 국립 경기장 건설을 논의해야 할 시간”이라며 “대표팀 훈련 시설 등 인프라를 잘 갖추게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축구협회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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