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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인류와 자연은 하나”... 과학의 대중화 넘어 대중의 과학화 기여

입력
2018.07.16 04:40
수정
2018.07.16 09: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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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소통하며 지혜 찾아

인간보다 지구를 더 오래 지켜본

동물세계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

자연에 대한 사유의 모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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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인문ㆍ사회과학과 소통

사회생물학자ㆍ진화생물학자…

학문의 경계 허물며 호칭 여럿

“범학문적 통섭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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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환경 보호를 말하다

과거 환경위기, 자연 순환에 내재

현재의 위기는 인류가 초래한 것

“동ㆍ식물과 살아가는 지혜 가져야”

생태주의자 최재천. 저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진화론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학자다. 인간은 그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는 존재, 곧 '호모 심비우스'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생태주의자 최재천. 저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진화론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학자다. 인간은 그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는 존재, 곧 '호모 심비우스'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 100년과 미래 100년의 사상을 주목하는 이 기획에서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식인들은 자연과학자들이다. 서구 근ㆍ현대 사상에서 자연과학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아이작 뉴턴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까지, 찰스 다윈에서 에드워드 윌슨까지, 그리고 토마스 쿤에서 일리야 프리고진까지의 연구들은 서구 모더니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과학사상들이었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주목할 자연과학자들은 적지 않다. 2001~2년 교수신문이 진행한 학술기획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에서는 물리학자 장회익의 ‘온생명’ 사상을 조명하기도 했다. 오늘 여기서 다루려는 자연과학자는 생물학자 최재천이다. 그를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그는 세계적인 동물학자다. 열대 우림을 누비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그는 민벌레 등 곤충들에 대해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다. 미국곤충학회의 젊은 과학자상과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둘째, 그는 자연과학과 시민과의 소통을 쉼 없이 모색한 지식인이다. 그가 내놓은 베스트셀러들은 ‘과학의 대중화’를 넘어서 ‘대중의 과학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연구와 저술에 중심을 두되 환경에 관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가 바로 최재천이다.

최재천의 지적 모험

최재천은 1954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ㆍ미시간대ㆍ서울대에서 가르쳤고,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학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냈고,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등을 맡아 왔다.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존재를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린 것은 ‘개미 제국의 발견’(1999)이다.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고도의 분업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쳐 보인 개미의 세계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최재천이 이채로운 자연과학자인 까닭은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흥미를 겸비한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사회학자인 내가 최재천의 학문적 기여를 제대로 평가하긴 어렵다.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최재천이 펴낸 책들이다. 그 가운데 내 시선을 사로잡은 저작들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2007), ‘호모 심비우스’(2011), ‘다윈 지능’(2012), 그리고 장대익과 함께 우리말로 옮긴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2005)이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2007)은 동물행동학에 관한 한국교육방송(EBS)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동물행동학의 대학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풍부한 내용을 알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달한다.

“동물을 연구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현재의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기에 이런 관찰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는 데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물행동학자들이 동물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지요.”

동물행동학에 대한 최재천의 설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재미와 사고와 성찰을 동시에 안겨준다는 데 있다. 인간 사회와 다름없는 동물들의 세계는 재미를, 그 동물들의 세계로부터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사고를, 나아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선사하는 책이다.

‘호모 심비우스’와 ‘다윈 지능’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호모 심비우스’가 극단적 경쟁과 환경 파괴로 인한 미증유의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인 호모 심비우스(공생인)를 제안한다면, ‘다윈 지능’은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다윈의 진화론과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번역본 ‘통섭’은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학과 인문ㆍ사회과학의 통합을 제시한 논쟁적인 저작이다.

최재천의 기여는 인간보다 지구를 더 오래 지켜온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를 안겨준다는 데 있다. 그는 협애한 인간 중심의 관점을 넘어서 보편적 생물과 지구적 존재의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사유의 모험을 선사해 왔다. 이러한 모험은 인문ㆍ사회과학이 담론을 주도한 우리 지성사에서 이례적인 것이자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한 것이다.

범학문적 통섭의 지식인

우리 사회에서 사회생물학에 관한 관심을 높인 것은 최재천의 또 하나의 기여다. 1990년대에 윌슨의 ‘사회생물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로즈 등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등이 번역되면서 사회생물학은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런 사회생물학에 대한 전문적 연구는 물론 대중적 계몽을 주도한 이가 최재천이다.

최재천은 자연과학과 인문ㆍ사회과학의 소통을 중시해 왔다. 이런 소통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은 2009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이화여대 통섭원, 한국과학기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부분과 전체: 다윈, 사회생물학, 그리고 한국’이다.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과학저술가 김동광, 정치학자 김세균, 그리고 최재천이 편집해 ‘사회생물학 대논쟁’으로 출간됐다.

이 저작은 사회생물학의 환원주의, 생물학 관점에서의 문화에 대한 설명, 사회생물학의 국내 수용을 다룬다. 논문 발표자들은 물론 책의 편집자들 역시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김세균이 사회과학자답게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배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최재천은 자연과학자답게 사회생물학에 우호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최채천은 말한다. “모든 생명 현상은 유전자가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 문화 역시 궁극적으로는 긴 유전자의 팔 안에 있는 셈이다.”

동물행동학으로 학문적 여정을 시작한 최재천의 호칭은 여럿이다. 사회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동물학자, 생물학자 등 그가 활동을 펼쳐온 영역은 넓다. 그는 최용상과 함께 ‘기후변화 교과서’를 편집한 뛰어난 생태학자이기도 하다. 통섭(統攝ㆍconsilience)이란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자연과학과 인문ㆍ사회과학을 새롭게 통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최재천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모두를 꿰려고 한 범학문적 통섭의 탁월한 지식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경의 미래

생태학이란 말을 주조한 이는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다. 생물들이 서로 환경을 형성하고 결합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루는 생물학의 한 분야다. 오늘날 생태학은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ㆍ사회과학에도 널리 쓰인다. 인간, 사회와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제3의 영역인 환경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의 환경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대기ㆍ수질ㆍ토양 오염은 물론 생물다양성 감소와 기후 변화를 더 이상 이렇게 놓아둘 순 없다. 현재의 환경위기는 과거의 환경위기와 다르다. 과거의 위기가 자연의 순환에 내재됐다면, 우리 인간이 초래한 현재의 위기는 인류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2009년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한 '다윈은미래다' 기획 특집에서 진행된 최재천과 리처드 도킨스의 인터뷰.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한 '다윈은미래다' 기획 특집에서 진행된 최재천과 리처드 도킨스의 인터뷰.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구 환경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환경을 대하는 태도 및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한 환경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물권을 이루는 동등한 존재라는 생태학적 자기계몽이 요구된다.

최재천은 말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만, (...)그렇게 많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구의 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태어난 지 몇 초밖에 안 되는 동물입니다. 게다가 몇 초 만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최재천은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우리 인간이 동물,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둘째, 기후변화 대책을 포함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환경파괴적 산업구조와 기술체계가 유지되는 한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은 미봉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지구 환경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구조적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 지구는 현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존재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공유물이기도 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려는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은 축복 받은 행성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지구를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부여된 더없이 중대한 미래 과제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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