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람 나이 '45살' 토끼의 투병기

※ 편집자주 : ‘토끼랑 산다’는 흔치 않은 반려동물 ‘토끼’를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토끼’에 대한 얘기를 토끼 엄마가 전해드립니다.
토끼 랄라가 지난 5월 농양 제거 수술을 마친 후 회복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다. 이순지 기자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기쁜 순간도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 아픈 순간도 있다. 바로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어 병을 얻었을 때다.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던 토끼 랄라의 병도 생각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

랄라의 오른쪽 턱 아래가 붓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다. 처음에는 지름 1㎝ 정도의 작고 말랑말랑한 멍울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처음보다 2배가 넘는 딱딱한 멍울이 손에 잡혔다. 그제야 심각성을 파악하고 경기 안양시에 있는 유명 토끼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는 랄라에게 ‘하악 치근단(뿌리) 농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악 치근단 농양’은 치아 질환 중 하나인데 이갈이가 제대로 안돼 부정교합이 있을 때 주로 생긴다. 부정교합이 있으면 벌어진 토끼 치아 사이로 세균이 들어가면서 치아 뿌리에 감염을 일으킨다. 농양은 감염된 죽은 세포가 뭉쳐 있는 것을 말한다. 치아가 약한 토끼에게 비교적 흔한 질환이지만 치료가 쉽지 않아 생명을 한 순간에 앗아갈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진료를 했던 수의사에 따르면 랄라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농양 때문에 왼쪽 턱뼈가 녹아내려 기형까지 왔었다. 수의사는 수술을 권유하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림치즈 같은 농양을 쏟아내다
수술 후의 랄라. 이순지 기자

미국 비영리 토끼 구조 단체 ‘하우스 래빗 소사이어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토끼 농양은 사람과 달리 두터운 막에 싸인 하얀색 크림 치즈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막 때문에 약이 잘 침투되지 않아 약물 요법으로는 사실상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보통 환부를 절개한 후 농양을 긁어내는 수술을 한다. 절개한 부분에는 항생제를 섞은 치료제를 넣는다.

농양의 양이 많아 치료제를 넣기 여의치 않으면 농양이 있는 부위를 봉합하지 않고 그냥 둔다. 농양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절개 부위를 그냥 닫아버리면 또다시 그 자리에 농양이 생기기 때문이다. 절개 부위를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한 경우 반려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반려인은 매일 절개 부위를 소독하고 농양을 짜내는 일을 해야 한다.

‘하악 치근단 농양’으로 진단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랄라는 수술대로 향했다. 수술을 미루면 미룰수록 랄라 턱 아래 큰 농양 주머니가 생기기 때문이다. 랄라는 4시간이 넘게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랄라는 오른쪽 턱 아래를 절개해 농양을 긁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항생제 치료제를 넣어줬다. 항생제 치료제는 농양이 생기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수개월간 효과가 지속된다고 한다. 또 뾰족하고 틈이 벌어져 세균이 침투해 농양의 원인이 된 치아도 최대한 뽑아냈다.

토끼의 경우 예민한 성격 때문에 마취 도중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긴 시간의 수술을 견디지 못해 수술하다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다행히 랄라는 수술을 잘 견뎠다. 수의사는 “앞으로 경과를 봐야 하지만 현재 수술은 잘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수술은 시작이었을 뿐…쏟아진 영수증들
수술비 영수증

랄라가 수술을 잘 견뎠다는 기쁨도 잠시. 내 손에는 ‘85만4,000원’이 적힌 영수증이 손에 쥐어졌다. 수술로 농양을 최대한 없앴다고 해도 재발할 확률이 높다. 또 지속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농양이 생기지 않게 도와주는 약을 처방받고 검진을 받아야 한다. 랄라의 경우 수술하고 한 달 정도는 매주 병원을 찾았다. 그때마다 약 값으로만 7만~8만 원의 돈이 나갔다. 또 치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트리밍’(Trimming)도 받아야 했다. 이 비용도 수십만 원에 달한다.

금전적인 부담은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치료를 받는 한 달 사이 예상도 못한 지출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전적인 문제 외에도 약 먹이기 등 랄라를 돌보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는 토끼는 약 먹이기도 쉽지 않다. 약 복용 스트레스 때문에 사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랄라는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했는데, 한 동안 스트레스로 내 곁에 오지도 않았다. 가끔은 매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또다시 수술을 앞두고 있는 ‘랄라’
눈물 흘리는 랄라

랄라는 지난 달부터 약을 끊고 경과를 한동안 지켜봤다. 토끼 농양을 줄여주는 약은 신장과 간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장기 복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약을 먹지 않던 한 달 동안 랄라는 치아 끝이 눈 부분을 찔러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 외에는 기분이 좋았던지 밥도 잘 먹고 곧잘 애교도 부렸다.

하지만 오른쪽 턱이 7월초부터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의사는 “처음 수술했을 때보다는 괜찮지만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랄라는 다음주 또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영국 토끼복지협회가 발표한 토끼 농양 관련 자료에 따르면 토끼 반려인들은 수술과 경과 살피기 과정을 반복한다. 수술로 농양을 없앤다고 해도 재발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병원 진찰 받으러 온 랄라

수술을 앞두고 랄라는 다시 농양을 줄여주는 약을 아침, 저녁으로 먹고 있다. 수술 전에 농양을 조금이라도 줄여놓기 위해서다. 다행히 처음 약을 먹였을 때보다는 수월하게 약을 받아 먹는다. 하지만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처럼 똑같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랄라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마취를 하고 차가운 칼을 만나야 한다. 수술 도중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난다고 해도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수술대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수술 외에 치료 효과가 뚜렷한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고, 그대로 두면 농양이 점점 커져 몸 전체로 퍼지기 때문이다.

랄라와 나는 ‘농양’을 두고 기약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많은 반려인들이 토끼를 처음 키울 때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랄라는 지키고 싶은 나의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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