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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둑 신고했다가… 40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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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둑 신고했다가… 40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입력
2018.07.11 2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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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구금 상태서 자백 강요”

재심, 첩보외 증거 없어 무죄

전남 신안군에서 농사를 짓던 박모(당시 26)씨는 1974년 6월 괴한 두 명이 자신의 집에 왔다 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관계기관 회의를 거쳐 괴한들을 소도둑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런데 박씨는 4년이 지난 1978년 갑자기 들이닥친 서울시 경찰국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남한에 귀순한 남파간첩 A씨가 경찰에 건넨 첩보가 빌미가 됐다. A씨는 “북한에서 한 공작원이 ‘1974년 신안군에 침투해 사촌동생을 만났고 사회 불만이 많아 포섭하기 쉬웠다’고 하더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 공작원이 4년 전 박씨 집에 침입한 괴한 중 한 명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이 된 친척인 공작원에게 박씨가 지역예비군 상황 등을 알려주고 북한 복귀를 도와줬다고 본 것이다.

박씨는 영장도 집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55일간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물고문 등의 가혹 행위도 당했다. 결국 박씨는 남파간첩(공작원) 지령 수행을 돕고, 반국가단체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수집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법원은 1978년 12월 박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무장 괴한을 만났을 뿐 남파간첩을 만난 적도 없고, 국가기밀을 수집한 사실도 없다”고 항소했지만 다음 해 7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A씨는 2015년 6월 자신의 혐의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작년 12월 재심을 결정했다.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박씨는 결국 무죄를 받았다. 재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박씨의 간첩 및 간첩방조 등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관들 강요에 자백한 피고인의 신문조서나 자술서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첩보 외에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 박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상세히 자백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참고인 진술들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인 증거였던 A씨 진술에 대해서는 “동료 간첩 두 명을 사살하고 귀순했던 만큼 간첩 수사에 적극 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납득할 이유 없이 진술이 번복되고 있어 신빙성이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과거 암울했던 권위주의시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범법자로 낙인 찍힌 채 영어의 몸이 됐을 뿐 아니라 출소 후에도 보안관찰 등으로 상당 기간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이제 피고인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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