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씨

지난 주 배우 장자연씨 사건의 수사ㆍ재판 기록을 분석해서 기사로 내보내기 전, 기록을 나눠서 살펴본 기획취재팀 기자 3명은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불쌍해요.” “장자연 착했던 것 같아.”

끝없이 이어지는 술시중과 접대, 폭행, 울음과 괴로움으로 집약되는 이 비참함의 기록들 중에서, 그나마 위로를 주는 대목이 한군데 있었다. 장씨 스타일리스트인 이모씨가 “장자연 스타일리스트를 한다(맡게 됐다)”고 말하자, 소속사의 전 총괄매니저인 유모씨가 “응, 자연이 좋은 애이니 잘해봐라”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좋은 애. 이 말은 5,048쪽의 기록들 중 내가 찾아낸, 장자연을 한 인간의 가치로서 언급한 유일한 진술이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다는 것에 감사할 지경이다.

술자리에서 한가락 하는 높은 남성들의 옆에 앉아 시중을 들 때, 그 여성의 내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그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마, 장씨를 철저히 ‘타자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타자화’는 기본적으로 이해와 연민을 차단한다.

사회적 약자, 혹은 조직 내의 약자들은 주류세력으로부터 크고 작은 ‘타자화’를 겪는다. 장씨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범죄의 형태도 있고, 켜켜이 쌓인 편견 속에서 악의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던 20대 중반에, 한 취재원이 내게 “여자여서 기자 하기 어렵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분명 자연스럽게, 걱정해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는데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남성 기자가 “남자라서 기자 하기 쉽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쉽게 나오겠는가. 스스로도 그 질문이 왜 그리 생경하고 당황스러웠는지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나의 껍데기(성별)에 불과한 것이, 내 공적 존재와 직결되는 핵심 영역(직업)을 좌우하고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아니 남들이 그렇게 본다는 점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여자여서’ 라는 질문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그 것은 내가 겪은 첫 ‘타자화’ 였고, 그 때의 감정은 당혹감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남성들(기자와 취재원) 속에서 나는 그들이 나를 달리 취급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배제와 소외의 감정, 즉 외로움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때만큼 무방비가 아니며, 그런 상황에서 해야 할 말도 대강 알고 있고, 상대가 악의가 없다면 나도 상처받지 않는다.

극단적인 ‘타자화’는 범죄 그 자체, 범죄의 공범이다. 대표적인 것이 수사ㆍ사법기관의 ‘가해자 이입’이다. 장자연씨 사건에서 장씨를 성추행 했던 조선일보 전 기자가 9년 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유를 보면 가관이다. 목격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피의자는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덮어씌우다 번복하고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는데도, 목격자가 어두운 가라오케 내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키와 나이를 차이 나게 진술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목격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더구나 장씨 문건의 의혹 대상자들은 모두 면죄부를 줬으면서, 이 건에는 “문서에 술자리에서의 추행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무혐의 이유를 보탰다. 검찰은 장씨나 여성 목격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이해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고, 가해자의 입장을 열렬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니 놀랍지는 않다.

그렇게 껍데기로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하고 대상화 하는 이들, 개개인의 내면과 본질로 한 발짝도 들어갈 생각이 없는 이들은 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자연이 좋은 애야”라는 말에 가장 대비되는 말이 기록에 있다. “여자가 팔뚝에 근육이 있으면 보기 싫다, 꽃이 활짝 핀 것보다 꽃봉오리가 있는 애가 좋다”라고. 장씨를 성추행 한 현장에서 조선일보 전 기자가 했다는 말이다.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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