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피해가기 어려운 난민 문제
반대 이유들 대부분 편견에서 출발
분절적인 공방에서 절충점 찾아야

두 아이는 시공(時空)은 달랐지만 선명한 아픔을 남기려는 듯 붉은 상의와 청색 반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2015년 9월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 세 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떠밀려 왔다. 그 3년 뒤인 지난달, 두 살 된 온두라스 소녀가 미국 멕시코 국경에서 불법 입국자로 검색 당하는 엄마 옆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난민 사태의 절박함을 이 보다 더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일란의 주검 앞에서 난민의 요새 같던 유럽이 문을 열었고, 소녀의 절규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의 아동 격리를 철회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 난민은 유럽, 불법 이민자는 미국의 뜨거운 감자에 불과했다. 제주에 온 예멘인 561명이 이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인권 측면을 떠나 지구촌 전체가 결부된 예멘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 일원인 한국이 회피하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세계가 몸살을 앓는 난민 사태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분절적이다. 예멘 난민 인정을 놓고 세대와 성, 종교, 경제력에 따라 반응은 상이하다. 여성은 안전 문제로 접근하고, 중산층과 젊은층은 일자리와 경제 문제로 바라보며, 종교단체는 인종 문제와 연결짓는다.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그 처지에 따라 자기의 이유가 있고 이것들이 모여 ‘반대’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인권법상의 의무, 인도주의와 윤리적인 측면에서 ‘찬성’과 ‘배려’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수많은 외국인이 입국해 일하고 있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도 넓어진 마당에 거센 반대 목소리는 놀라운 일이다.

난민 논의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5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그 규모에 놀라 집단적 공포감이 먼저 엄습했을 것이다. 또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보니 제각각 반대 이야기가 먼저 터져 나왔을 수 있다. 사실 난민, 외국 이주자에 대한 반감은 유행처럼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명맥만 유지하던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반이민, 인종혐오,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극우 바람을 키우고 있다. 아일란 사태 이후 국경 개방으로 100만 명이 넘는 난민 쓰나미가 발생한 독일에서도 국수주의, 포퓰리즘이 부활했고, 영국은 반이민 정서 속에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를 공약으로 표를 끌어 모았다.

그러면 이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것일까. 우려와는 반대로 이들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저숙련 노동력 부족 문제를 메워주고 있다. 그러면 이들이 안보에 위협 요인이 될까.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외국인 유입이 테러 경로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들의 범죄율은 또 어떨까. ‘외국인은 범죄자’라는 편견이 여전하지만 국내에서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 범죄율에 휠씬 못 미친다. 예멘 난민 반대 정서의 한편에는 이들이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것이란 우려도 깔려 있다. 하지만 1985년 조사된 전국의 성씨 275개 가운데 136개 성씨는 시조가 귀화한 외국인이었다. 이후 외국인 유입이 본격화하면서 2015년 성씨는 5,582개로 20배 넘게 증가했다. 시간이 갈수록 피를 나눈 단일민족이 아닌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통계로 볼 때 ‘우리는 단일민족’에서 출발한 난민 반대는 편견의 신화일지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뜨거운 공방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찬반이 인종주의나 규범론으로 흐르지 않는 건 긍정적이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씨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이해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사람들의 공포를 객관적 정보로 걷어내면 설득력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찬반이 아니라면 ‘웰컴 투 코리아’를 논의하고 절충점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는 전쟁 피란민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였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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