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제네바합의로 1차 북핵 위기가 잦아든 1998년 8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느닷없이 북한의 핵 재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과 가까운 평북 금창리의 지하터널을 핵 개발에 이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금창리 핵 개발 의혹’이다. 북한의 완강한 부인에도 미국은 강하게 압박했고 몇 차례 실무협의를 거쳐 미국 사찰단이 금창리를 방문했다. 하지만 사찰단이 확인한 것은 텅 빈 동굴뿐이었다. 북한은 당시 현장조사 허용 대가로 상당한 규모의 식량을 지원받아 고난의 행군 시기 마지막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 북한 핵 개발 역사를 되짚어 보면 미국발 의혹들이 넘쳐난다. 1999년 워싱턴타임스가 처음 보도한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은 2002년 방북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폭로에 이어 2차 북핵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북한은 부인하고 있지만 상당한 양의 HEU를 보유했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 2007년 제기된 시리아 핵 개발 지원 의혹처럼 진실을 확인할 길이 없는 정보도 적지 않다. 대체로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국방정보국(DIA)이 흘리는 북한 핵 개발 의혹의 진위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 이번에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와중에 핵ㆍ미사일 능력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언론들은 역시 DIA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강성’이라는 지역에서 영변 핵 시설보다 두 배나 많은 HEU를 생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를 65개로 파악하고 있지만 북한은 훨씬 적은 수치를 제시하고 있으며 장거리미사일 개발 속도도 늦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미 정보 당국 공히 ‘강성’이라는 지역의 위치를 특정하지 않는 등 미심쩍은 대목이 적지 않다. 북미 후속 협상을 앞두고 북한 압박 카드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다만 미국이 북한의 핵 능력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이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차 방북에서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은폐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북한의 성실 신고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미국과 북한이 핵 시설 신고ㆍ검증의 본격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 북핵 협상이 성실 신고와 충분한 검증 단계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혔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제시하는 핵ㆍ미사일 리스트가 북핵 후속 협상의 1차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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