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성리학 핵심 골라 선조에 바친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펴내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21세기에 다시 한번 읽어볼 책으로 꺼내 들었다. '진리는 오래되고 오류만이 새롭다'는 게 그의 변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 그래도 편집자한테 욕 좀 먹었습니다. 한문 빼자고, 이렇게 두껍게 할 이유가 뭐냐고.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 책은 ‘읽기’ 위한 게 아니라 ‘음미’하고 ‘체화’하기 위한 책인데.”

2일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허접한 꽃들의 축제’(문학동네)를 통해 현대적 불교 이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던 한 교수다. 이번에 들고 나온 건 퇴계 이황(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다. ‘자기구원의 가이드맵’이란 부제를 붙였다지만, 16세기 당대 최고 유학자가 즉위한 지 2년 된 열여섯 살 임금 선조에게 바친, 500년 가까운 시공간의 격차가 있는 글이다. 이를 메우려면 읽기 좋도록 요란하게 포장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한 교수는 오히려 한문 100% ‘원문’, 읽기 좋게 토를 달아둔 ‘현토’, 우리말로 풀었지만 거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 여기에다 조선 유학사에다 동서양 비교론까지 버무린 ‘주석과 해설’ 등 4단계를 거치도록 해뒀다. 마지막엔 아예 1744년 영조가 만들었던 성학십도 책 원문까지 그대로 붙여뒀다. 그 덕에 852쪽에 이른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경북 안동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 설치된 퇴계 이황의 동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술 전략이 특이하다.

“옛 독서법이다. 반복해서 읽다가 자연스레 암송하고 체화하게 된다. 성학십도 자체가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실행해야 하는 책이다. 한번 쓱 읽고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멈칫멈칫 다시 읽고 곱씹어 읽어야 한다. 알다시피 ‘삶의 기술’에 대한 문장의 참 맛은, 별스럽지 않은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는 데 있다. 이 책도 더듬더듬 힘겹게 전진하지만, 단계별로 음미하며 다시 읽어가는 책이길 바란다.”

-책 중에 왜 ‘성학십도’인가.

“한마디로 조선 주자학을 총괄 지휘한 책이다. 공자와 맹자가 책을 남겼지만, 삶 그 자체, 길 그 자체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체계적이거나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이후 주도권은 노장과 불교로 넘어갔다. 주자는 ‘유불선 삼교 통합’으로, 일상 속 구원과 정치적 기획을 한데 합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주자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선 선비들의 숙제였다. 퇴계 선생은 ‘성학십도’로 그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다.”

-유학에 대해 너무 낡았다는 이미지는 어떻게 하나.

“칸트 철학을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자 쇼펜하우어는 ‘비평은 쉬우나 이해는 어렵다’고 했다. 마찬가지다. 유학은 신분, 젠더, 권위 등 여러 차원에서 문제 있다. 결정적으로 조선을 망하게 했다. 그러니 비판은 손쉽다. 하지만 통틀어서 전체적으로 비판하다 보니 구체적인 세부를 진짜 이해했는가, 라고 되묻고 싶다. 유학의 ‘권위’랄 것이 거의 없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지금이 오히려 가장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을 때라 본다.”

-성학십도의 어떤 부분이 가장 와 닿았나.

“미국 철학자 윌 듀런트는 ‘진리는 오래된 것이요, 오직 오류만이 새롭다’는 말을 남겼다. 동서, 그리고 고금을 가로질러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자의 목소리는 늘 비슷하다. ‘삶의 기술’ 그리고 ‘자기 수양’의 문제 등에 있어서 ‘성학십도’는 그 말이 그르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라 확신한다.”

-퇴계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 한 적이 있다.

“종교적 체제와 종교적 마인드는 다르다고 본다. 구체적 종교를 떠나 카오스 뒤에 있는 코스모스에 대한, 우주와 생명에 대한 외경은 모든 인간에게 있다. 헤겔은 근대를 ‘외경이 사라지고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말로 정리했다. 근대의 여러 문제점이 노출된 지금, 인문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지금 오히려 퇴계의 종교적 마인드가 강점일 수 있다.”

-불교에 이어 유학을 정리했다. 이제 노장 차례인가.

“궁극적으로는 세 가지는 다 통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건 아니겠지만, 결국 그리로 가게 되지 않을까.”

조태성 기자 amorfati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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