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 읽어] <8> '동주''박열' 출연 영화배우 최희서

영화배우 최희서(오른쪽)와 김민정 시인이 서울 서교동 카페에서 만나 책을 이야기했다. 최희서는 김 시인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과 줄리언 반스의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들고 나왔다. 신상순 선임기자
“‘동주’ 개봉 때 윤동주 낭독콘서트
함께 했던 김사인 교수님이 엮은
‘시를 어루만지다’ 아껴 읽어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 기록
첫 한국어 버전 나왔을 땐 행복
반스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
4년 전 명계남 선배님이 선물
어렵지만 재밌어서 읽고 있죠 “

영화 ‘동주’를 다시 보았고, 영화 ‘박열’을 새로 보았다. 내가 만나기로 한 배우 최희서, 그녀가 그 두 편 속에서 후카다 쿠미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해 있었는데 그 둘의 캐릭터가 짐짓 강물처럼 흐르거나 가문 바람처럼 불고 있는 거였다. 묘했다. 선연했다. 그러니까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불편하지 않다는 것, 그녀를 자연으로 그리 느끼는 데서 나는 어떤 풍경 하나를 마주한 듯도 했다. 사람인데, 배우인데, 왜 나는 그녀를 청정의 고집 센 풍경(風磬)으로 올려다봤던 걸까. 배우로서 그녀가 살고 있는 생은 이승일까 저승일까, 질문거리로는 유일하게 그걸 들고 갔다. 그러나 끝내 묻지 못했다. 청승일까 봐.

김민정(이하 김) = 세상에나 그 책 오래 전 건데요. 동연에서 나온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저 대학 1학년 때니까 1995년쯤일 텐데요.

최희서(이하 최)= 4년 전에 명계남 선배님이 선물로 주셨어요. 오래되긴 했나 봐요. 가격이 6,500원? (웃음) 좀 어렵긴 한데 재밌어요. 요즘 읽고 있는데요, 원서가 궁금해서 교보문고 가서 찾으니까 없더라고요. 원서가 있는 경우에는 되도록 그걸 찾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참, 선물 받은 게 한 권 더 있었는데 ‘태아에게 주는 편지’라고, 이탈리아 종군 여기자인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전적 이야기에요. 훗날 기회가 되면 일인극으로 무대에 올려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시인님도 무척 좋아하실 책 같아요.

김= 이탈리아어를 포함해서 5개 국어를 한다면서요.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으니 가능한 얘기겠지만요.

최= 초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본 소설들은 다 일본어로 읽는 편이에요. 제가 일본에서 한인 학교를 다녔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연극으로 올린 심청전에서 심청 역으로 무대 위에 처음 올랐는데요, 암막 커튼 뒤에서 딱 객석을 보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반짝반짝하는 무대가 되게 설레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어렴풋하게 연기란 걸 하고 싶다, 꿈을 꿨던 것 같아요. 제가 미국 뉴저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운이 좋았는지 특별활동 중에 연기 수업이 있었어요. 그때 그리스 비극을 무대 위에서 공연하기도 했어요. 그리스어 독백을 하니까 어렵기는 한데 신선하기도 하고 뭔가 근원적인 문제들이 소재의 대부분이니까 공감을 해보려는 노력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입에 붙지 않은 언어를 달달 외우고 나의 말로 나의 몸으로 체화를 한다는 건 두고두고 큰 경험이 되어 주었어요.

영화 '박열'에 출연한 최희서.
김= 대학을 한국에서 다녔단 말입니다.

최= 입학 결정이 나고 한 3개월을 대학로의 연극만 보러 다녔어요. 창작극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보면서 계속 울컥울컥하는 거예요. 저 무대 위에 서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좋은 내용에 좋은 배우들의 연기에 감정이 몰입되는 감정 반, 그러다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연기학원에 갔어요. 입시로 대학에 갈 거냐고 묻기에 이미 대학에 진학을 했다고 하니까 그때 원장님이 그럼 연세대에 오래된 연극 동아리가 있다, 연희극회라는 데가 있다, 그리로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 말 하나만 믿고 입학식도 안 가고 2008년 3월 2일이 딱 되자마자 동아리방을 찾아갔지요.

김= 재학 내내 연극에 빠져 살았던 것이 상상이 되는데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최= 스물세 살에 영국에 있는 드라마 스쿨에 가려고 8개월 동안 준비를 했어요. 일 년에 한 10명 뽑는 데였거든요. 오디션이 4차까지 있었는데 그만 3차에서 떨어진 거예요. 서울로 돌아와서 복학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지인 분이 영화 ‘킹콩을 들다’ 오디션을 한번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상업영화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지요.

김= 연극과 영화의 대사 치는 톤이랄까, 좀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한데 처음부터 적응을 잘했나요?

최= 아니요! 너무 연극적이라고 하셔 가지고 큰 상처를 받았어요. 연극 동아리에서는 그래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누가 저한테 못한다고 하니까 처음으로 주눅이 크게 들더라고요. 인간 최희서 자체가 ‘쭈구리’가 되니까 연기 자체가 안 되더라고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거는 극복을 못 했어요. 그랬던 일이 이제는 제게 긍정적인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연극적이라는 게 뭘까, 하는 화두도 붙들게 되었고요. 참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극적이다, 라는 그 말이요. 영화 ‘동주’를 찍으면서 차츰 극복해 나갔던 것 같아요. 영화 연기도 잘하고 싶다는 내 안의 치열함과 엄청 싸워가면서도 여기까지 왔던 것 같아요.

영화배우 최희서와 김민정 시인. 신상순 선임기자
김= 그래요. 우리가 영화 ‘동주’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겠지요.

최= 왜 아홉수라는 게 있잖아요. 스물아홉인데 보는 오디션마다 다 떨어지고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땐데 친한 배우 언니와 오빠랑 셋이서 돈을 모아 연극을 올리기로 한 거예요. 거의 2인극이나 마찬가지여서 대사가 많았는데 제가 매번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걸 외웠거든요. 근데 이게 외우다 보면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러고 가는데 제가 대사 읊는 모습을 건너편에 앉아 계신 어느 한 분이 보신 거예요. 같은 역에 내리면 저 친구에게 명함을 한번 줘 봐야지 했는데 함께 경복궁역에 내리게 된 거예요. 그 명함을 주신 분이 ‘동주’의 제작과 각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님이셨어요. 정말 신기하죠? 제 인생에서 가장 영화 같은 장면이라 할 수 있어요.

김= 결국 이준익 감독님과의 인연은 그 명함 한 장으로 시작된 거군요.

최= 저야 무슨 영화 준비하시는지 잘 몰랐죠. 프로필을 보내 보라 하셔서 이력서에 특기를 일본어라고 써서 보낸 게 다였는걸요. ‘동주’의 원래 제목은 ‘시’였대요. 그 영화에 일본 여성 역할이 있는데 미팅 한번 해볼래? 해서 찾아가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때 너무나 필사적이어서 캐스팅이 안 되면 그냥 연출부라도 하게 해주십사 조를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절 보시더니 영화에 쿠미라는 일본 여성이 나오는데 네가 아는 일본 성을 한번 지어 봐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후카다 어때요? 했죠. 무슨 뜻이냐 하셔서 깊을 ‘심’에 밭 ‘전’을 쓰는 것 같아요, 했죠. 그럼 한번 써 봐라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서 써서 보여드리니까 심전이구나, 괜찮네. 그 다음부터는 일본어를 얼마나 하는지, 연극은 얼마나 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더 물으셨어요.

김= 이준익 감독님이 해 주신 말씀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최= 한번은 감독님이 희서야, 내가 ‘박열’이라는 작품을 할 것 같은데 여기 되게 멋있는 여자가 나와. 가네코 후미코라고, 지금 이 여자의 자서전을 번역한 출판사가 한 군데 정도 있는데 한번 찾아 봐, 라고 하셨어요. 또 한번은 ‘박열’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난 다음이었는데 감독님이 희서야, 앞으로 사람들이 가네코 후미코를 떠올릴 때면 네가 연기한 그 모습으로 떠올릴 거야, 라고 하셨어요. 평생 잊을 수가 없겠지요.

김= 그래요. 영화 ‘박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얘기잖아요.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생 최고의 캐릭터를 만났는데요.

최= 처음 영화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나’라는 책밖에 없었어요. 다 읽고 났는데 후미코의 말이 궁금한 거예요. 그녀가 예를 들어 고즈넉했다, 라고 말했다면 일본어로는 어떤 표현이었을까… 그래서 일본어판을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 놀란 것이 어떻게 십대 여자 아이가 내 삶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삶이 괴로워서 자살 시도를 하려는 와중에 마주한 하늘이 이렇게 파란데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내가 왜 괴로워하는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처음에는 전율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슬픔이었다가… 사진도 남아 있고 하니 어떡하지 싶으면 비빌 언덕인 양 멍하니 이 분 사진을 쳐다보곤 했어요. 그러다 답답하면 경북 문경에 다녀오곤 했어요. 거기 이분의 묘지가 있거든요. 거길 세 번 갔다 왔어요.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로 내가 이 사람을 연기하게 되겠구나, 내가 이 사람이 되어가겠구나, 직접적인 교감은 아니지만 나름의 교감을 우리는 하게 되겠구나, 느꼈었던 것 같아요.

김= 문경이라… 그러고 보니 저는 문경이란 곳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네요.

최= 재미난 게 제 본명이 문경이거든요(웃음). 사주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해서 할머니가 지어 주셨다는데 그 이름이나 내가 가는 데나 문경인 걸 보면 또 그것도 인연인 것 같았고요. 아무튼 문경에 ‘박열 의사 기념관’이 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재판 기록을 보게 되었어요. 한 500쪽쯤 되려나, 완전 일본어에 심지어 고어에 글씨는 작지, 한자는 어렵지 해서 그거 읽으려고 문방구에서 돋보기를 다 샀다니까요. 그리고 두 나라 말로 나온 자서전에, 소설에, 평전까지 읽을 수 있는 모든 기록물은 다 찾아 읽었던 것 같아요. 정말 학자의 책상처럼 책이 쌓여 있던 시기였어요. 나 말고는 이 역할을 내게 주입시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외롭기는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기쁜 건 하루에 한두 명 올까 말까 했던 박열 의사 기념관에 성수기 때는 하루에 150명도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김= 일본어가 수준급인 연유로 ‘박열’의 대본을 정확하게 하는 데 분명 일조를 했겠어요.

최= 큰 역할까지는 아니고요, 어차피 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 배우는 거라 제가 읽은 기록의 내용을 틀리지 않게 알려드리는 정도였지요. 영화 속 재판과 심문에서 하는 말들은 실제로 두 사람이 했던 말 그대로 뽑아서 쓴 거라고 보시면 되어요. 그건 자신할 수 있어요. 또 자료 중에 실제 필체가 있어서요, 그것도 연습을 하고 원고지도 똑같이 제작을 해서 열을 맞춰 아주 비슷하게 써보기는 했던 것 같아요.

김= 한 사람의 노력이 이렇게 위대한 거예요. 장해요, 정말.

최= 저는 연말에 상도 많이 받고 저희 영화도 다 끝난 거잖아요. 그리고 새해가 되었는데 저한테 문경으로부터 책이 한 권 온 거예요. 그게 뭐냐면… (울음 터짐)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재판 기록의 첫 한국어 버전이 온 거예요. 그 사이에 번역이 된 거예요. 모든 게 다 끝나서 이제 나는 ‘박열’과 안녕을 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 기억이 불쑥 온 거예요. 이럴 거면 진작 번역해주지, 웃으면서 그랬지만 다시 떠올려도 너무 벅차요.

김= 그나저나 시를 많이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동주’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요.

최= 원래부터 윤동주는 좋아했고요, ‘동주’ 개봉했을 때 김사인 교수님과 윤동주 낭독콘서트란 걸 했었어요. 그때 시인님이 ‘자화상’을 낭독하시는데 옆에서 가만 들으니까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시인의 낭독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배우면서 김사인 교수님이 엮으신 ‘시를 어루만지다’라는 책을 찾아 읽었지요. 한강 작가의 시집도 얼마 전에 읽었고요, 최승자 시인의 시집도 좋아하는데 심취해서 읽으면 정신적으로 약간 힘들어지더라고요. 시는요, 문장 자체에서 오는 어떤 쾌감이 있잖아요. 재밌게 읽다가 어떤 한 문장에 타격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 충격을 즐기느라 아끼는 것 같아요.

김= 호흡이 긴 책들도 무리 없이 읽어왔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 스토리가 장대한 이야기도 좋아할 것 같아요.

최=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토지’를 다 읽었어요. 저는 ‘토지’ 완전 사랑하거든요. 특히 ‘최서희’라는 캐릭터요. 그쵸. 제 이름 거꾸로 하면 딱 최서희잖아요. 어떻게 보면 제가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진취적인 여성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본인 삶의 운명을 본인이 개척하는 캐릭터는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토지’의 영향으로 ‘태백산맥’, ‘혼불’, ‘아리랑’, ‘장길산’도 읽어나갔는데 다 절반 정도에서 손을 놨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토지’처럼은 안 읽히더라고요.

김= 책처럼 배우로서 한국 영화사에 남게 될 이름일 텐데요. 도망가기에는 상을 너무 많이 받았다 싶으니 말이지요.

최= 에이, 그건 너무 거창한 말씀이고요. 틀에 갇히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반복적인 여성상은 피하고 싶고요. 직업군도 다양하게 해 보고 싶고요. 주변에서는 이제 제발 한국 사람 좀 해, 웃으면서들 거드는데요, 일본인이든 동포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또 저만의 특권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맞다, 아직 결정한 건 아니지만 혹시 하게 된다면 다음 배역은 아마도 조선족 여인일 것 같은데요.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 배우 최희서는 영화 ‘박열’로 지난해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상, 디렉터스 컷 등에서 신인상을 휩쓴 충무로 기대주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했고 2016년 영화 ‘동주’로 주목받았다. 일제강점기 배경인 ‘동주’와 ‘박열’에서 연기뿐 아니라 일본어 대사 번역도 했다. 최근에 OCN 드라마 ‘미스트리스’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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