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는 ‘서구의 위기’가 의심할 여지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물론 서구 국가들은 종종 제 각각의 외교정책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라크전쟁 때만 해도 그렇다. 따져보면 ‘서구’라는 개념 자체도 모호하다. 그럼에도 서구는 중요한 이념적 기반들을 함께 하는 하나다. 그게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붕괴하고 있다.

트럼프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 친구들이 우리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걸 용납할 수 없다”며 ‘동맹국 때리기’를 거듭해왔다. 그 부작용은 국제관계에서 실질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들 간에 오랫동안 지속돼왔던 핵심적 이해의 기반을 무너뜨릴 각오가 돼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이 G7 회의의 공동성명을 거부하는 사태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또한 미국 행정부의 누구라도 최근 트럼프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향해 내뱉었던 그런 언어로 캐나다 지도자를 공격하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었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트뤼도 총리와 좋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리곤 “지금은 김 위원장과도 매우 좋은 관계”라고 덧붙였다. 설사 이 두 정상들과 미국의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 아주 어색하지는 않다 해도, 그런 비교는 전적으로 바보 같은 짓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시각이 얼마나 취약한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심각한 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관계를 훼손할 정책들을 굳건히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캐나다ㆍ유럽연합(EU) 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관세폭탄’은 G7 차원의 합의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비단 외국 수출업자에게만 타격을 주는 게 아니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재료로 쓰는 미국 기업과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트럼프는 그런 현실이나 경제논리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G7 회의가 상호비난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때, 중국 칭다오에서는 별도 정상회의가 열렸다. 상하이협력기구(SCO) 연례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동은 트럼프와 다른 G7 정상들의 만남보다 훨씬 화기애애했다.

트럼프는 관세 외에 또 다른 문제로 G7에 분란을 일으켰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G7에서 축출된 러시아의 재가입을 제안한 것이다. 물론 러시아 재가입론은 국제사회에서 다국적 회의체가 지나치게 세분화됨으로써 세계문제 해결이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중요한 논점을 제시하고 있긴 하다. 다국적 회의체의 난립은 서구에게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서구 지도자들은 고립적 태도로 세계무대에서 뒷걸음질 칠 게 아니라, 국제협력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 영향력 있는 국가의 범위를 보다 넓힌 G20 회의의 활성화 지원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향한 트럼프의 유화적 접근은 높은 장벽에 맞닥뜨려 있다. 그건 푸틴의 외교정책이 서구 안보체제에 점점 더 적대적이 되고 있으며, 트럼프와 크렘린과의 관계가 미국 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트럼프의 오만이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좀 망설이긴 했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상호방위 조항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다른 NATO 회원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비롯된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NATO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증액해도 증액분이 NATO 예산으로 가거나, 미국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자체 방위력 증강에 쓰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EU는 이미 회원국 안보 및 국방자원의 효율적 결집과 활용을 위해 ‘항구적 안보국방협력체제(PESCO)’를 출범시켰다. 미국으로서는 그런 접근을 환영해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EU가 내놓는 대부분 집단적 시도에는 회의적 반응을 보일 뿐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는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했다. 취임 후 트럼프 행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EU 약화를 위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리처드 그레넬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유럽에서 보수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 정부가 다수인 유럽 주재 대사로서는 분명히 외교관례에 어긋난 발언이고, 그가 말하는 ‘보수’조차 진짜 보수가 아닌, 그저 진보와 싸울 반동에 불과할 뿐이다.

트럼프가 EU 같은 다자체제를 싫어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상호 협력할 때, 공감하는 규준에 따라 설립된 국제기구에서 함께 할 때 가장 성공적이었다. 트럼프가 선호하는 ‘분할통치’ 전략은 패배자만 생기는 게임이 될 것이다. 서구를 비롯해, 전세계에 걸친 패배 말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