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도메니칼리 람보르기니 CEO

스테파니 도메니칼리 CEO

글로벌 슈퍼카 제조업체인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상징은 ‘황소’다. 기업 엠블럼 가운데 금방이라도 뿔을 곧추세우고 맹렬하게 달려올 것 같은 성난 황소가 자리잡고 있다. 또 람보르기니가 출시하는 자동차에는 스페인 투우장에서 이름을 떨쳤던 황소나 투우사, 투우용 칼 등의 이름이 붙여진다. 생일 별자리가 황소자리였던 람보르기니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1916~93)는 자신을 ‘타무노’(tamugno)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타무노는 그가 살던 이탈리아 지역 방언으로 ‘싸움소처럼 강하고, 단단하고, 굳건하다’는 뜻이다. 페루치오는 그 기질대로 황소처럼 맹렬하고 강력한 스포츠카를 만들기 원했다. 1963년 처음 회사 문을 열 때마저도 황소자리에 해당하는 5월을 골랐을 정도이다.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엠블럼.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역대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전 세계 50개국 145개의 딜러 네트워크를 통해 지난해 판매된 자동차는 3,815대로 전년동기(3,457대) 대비 10% 증가했다. 람보르기니는 최근 7년 동안 높은 판매 성장률을 기록, 2010년(1,302대) 이후 판매량이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에서 1,905대가 판매돼 단일시장으론 가장 컸고, 일본(411대) 영국(353대) 독일(303대) 중국(265대) 캐나다(211대) 중동(164대) 등의 순이었다.

페루치오가 처음 슈퍼카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주위에선 온통 비웃음이었다. 농업용 트랙터 제조로 돈을 번 사업가가 허황한 꿈에 취해 첨단기술이 필요한 슈퍼카에 무모하게 도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다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페루치오는 그야말로 황소처럼 밀어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페루치오는 람보르기니 창립 3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인 스포츠카 ‘미우라’를 내놓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며 “람보르기니는 이후 슈퍼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자동차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테르조 밀레니오
람보르기니 “전기차 시대에도 내연기관차와 균형”

람보르기니 사업 전략의 핵심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트렌드에 맞춰나가기보다는 자사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람보르기니는 자동차가 주는 다양한 가치 중 브랜드 이미지인 ‘황소’에 걸맞은 특성을 찾아내 이 부분만 강조하는 ‘올인’(All-in) 전략을 구사해왔다. 울퉁불퉁하며, 사다리꼴에 직선이 가미된 외관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 이유도 그 모습이 투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람보르기니의 최대 고민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기업의 미래를 새롭게 변화해 나가는 일이다. 2016년 람보르기니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스테파노 도메니칼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있는 우리 주요 고객과 딜러들은 V12(12기통)로 대변되는 내연기관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며 “자동차의 대세로 전기차가 자리잡는 변화를 외면하는 태도를 고집할 순 없겠지만, 그 와중에도 균형을 잡고 싶다”고 밝혔다. 전기차를 도입하겠지만 내연기관이 고객들에게 주는 감성적인 부분은 지켜나가겠다는 의미이다. 람보르기니는 최근 콘셉트카 ‘테르조 밀레니오’를 통해 전기 슈퍼카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도메니칼리 CEO는 “2026년까지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전기 파워트레인을 장착하면서도 람보르기니의 성능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기술을 갖출 것”이라며 "슈퍼카의 100% 전기동력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람보르기니가 최근 7년 동안 지속적인 판매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 친화적인 마케팅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는 우선 ‘슈퍼카는 운전이 까다롭다’는 선입견을 줄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창업자 페루치오가 트랙터 공장을 운영했던 전통을 계승해 슈퍼카에도 운전을 간편화하고 효율화하는 데 집중했다. 4륜 구동을 도입해 차체의 접지력을 높여서 운전자들의 승차감을 개선하면 소수 스포츠카 마니아층도 만족시키면서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운전해볼 수 있는 자동차가 되도록 한 것이다. 슈퍼카 제조업체 중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등 과감한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지속적인 운영 효율 개선 및 원가 절감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 람보르기니는 아우디와 일부 모델에서 엔진과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아우디의 R8과 람보르기니의 가야르도가 대표적 예다. 아우디와의 생산, 운영 시스템을 공유하면서 소규모 생산 및 판매에서 오는 높은 생산원가와 운영 비효율을 극복한 것이다. 도메니칼리 CEO는 “우리는 미래의 람보르기니에서 우리가 그간 쌓아온 DNA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절대로 눈앞의 판매량에 집착하지 않고 확고한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오른쪽)가 지난 1966년 세계 최초의 미드십 엔진을 탑재한 2인승 스포츠카 ‘미우라’를 출시한 뒤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트랙터 개조에서 슈퍼카 개발로

람보르기니의 역사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레나초에서 시작된다. 창업주인 페루치오는 1916년 이 마을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용차를 정비하는 병사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결혼한 그는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버려진 군용트럭을 보고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버려진 군용차를 끌어 모아 트랙터로 개조하는 사업에 매달렸다. 페루치오는 곧 큰돈을 벌었다. 그는 곧 부자들이 좋아하는 취미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자동차인 피아트를 개조해 레이싱 대회에 출전했고 고급 차를 수집해 주차장에 전시해놓고 자랑거리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그에게 슈퍼카 제조기업은 꿈나라 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페라리 창업주인 엔초 페라리와 악연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페루치오는 1960년대 초 인기 스포츠카인 페라리 250GT를 구입해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자꾸 차의 변속기가 고장 나서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직접 나서 페라리 250GT의 문제점을 샅샅이 찾아냈다. 이후 엔초 페라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페라리 모델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유익한 건의사항을 전달할 참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페루치오에게 시련에 가까운 봉변을 줬다. “트랙터나 만들던 사람이 어떻게 슈퍼카를 알겠나. 트랙터나 운전해라.” 엔초 페라리의 대답이었다. 페루치오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황소처럼 성난 기질의 페루치오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제대로 된 스포츠카를 전 세계에 보여주고 말겠다.”

페루치오는 1962년 슈퍼카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 단 1년 만인 1963년 5월 슈퍼카 제조업체인 ‘오토모빌리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를 창업했다. 이후 지금 본사 근처인 이탈리아 볼로냐의 산타가타 볼로뉴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공장을 건립했다. 페루치오는 페라리에 있던 인재들도 대거 스카우트했다. 당시 페라리의 최신 엔진을 개발한 조토 비자리니를 주축으로 파올로 스탄자니, 잔파울로 달라라 등의 기술자들이 람보르기니에 합류했다. 페라리를 이기겠다는 페루치오의 불 같은 열정이 그들을 감동하게 했다. NYT는 “페루치오는 공개적으로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자’라고 말했다”며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람보르기니는 페루치오의 손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미우라
슈퍼카의 기준을 만들다

페루치오는 창립 3년만인 1966년 세계 최초의 미드십(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배치해 차의 전후좌우 균형을 이상적으로 맞춘 방식) 엔진을 탑재한 2인승 스포츠카 ‘미우라’를 출시했다. 지금도 슈퍼카의 역사를 새롭게 쓴 차로 평가되는 모델이다. V12 엔진을 탑재한 미우라는 최대출력 350마력, 최고시속 280㎞의 성능을 발휘하며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6.7초에 불과하다. 출시되자마자 모든 차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라는 왕관을 얻었다. 특히 미우라에서 출발한 미드십 엔진 방식은 이후 페라리를 비롯해 수많은 자동차업체가 따라 했고, 지금까지도 정통 슈퍼카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페루치오를 무시했던 엔초 페라리도 “미드십 엔진 방식은 매우 우수하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했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이제 페라리가 람보르기니를 의식하고 흉내 낸다.” 페루치오의 통쾌한 복수였다.

페루치오는 1973년 슈퍼카 쿤타치(카운타크)를 출시하며 또 한번 슈퍼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금도 람보르기니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디자인인 ‘시저스 도어’(가위처럼 일자로 위를 향해 열리는 문)이 최초로 도입된 모델이다. 당시 자동차업계엔 그야말로 일대 충격을 몰고 온 차다. 워낙 낮은 차체 전고(높이)와 넓은 전폭(너비)으로 일반 문을 적용하기 어려워 채택된 디자인이었지만, 자동차 애호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쿤타치는 최대출력 455마력, 최고시속 300㎞라는 경이적인 성능으로 페라리를 압도했다. 람보르기니는 쿤타치 이후로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아반타도르, 우라칸에 이르기까지 모든 슈퍼카 모델에 문신처럼 시저스 도어 디자인을 적용했다.

디아블로
람보르기니에 남은 페루치오의 DNA

페루치오의 시대는 오래가진 못했다. 1970년대 트랙터 사업의 경영악화로 자금 압박이 심해진 데다 1, 2차 글로벌 석유파동까지 발생하자 페루치오는 람보르기니를 스위스 사업가인 앙리 로세티에게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84년 밈란 형제, 1987년 크라이슬러, 1994년 메가텍, 1995년 V파워 앤 마이컴 등으로 넘어갔다가, 1999년 현재의 아우디그룹으로 인수됐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던 시기 동안에도 람보르기니에선 끊임없이 역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1990년에 출시된 디아블로는 최고시속 325㎞, 제로백 4.5초를 기록하며 슈퍼 스포츠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세기 스페인 투우장에서 명성을 떨쳤던 황소에서 이름을 따온 디아블로는 2001년까지 여러 가지 콘셉트카로 변형, 생산되며 전 세계에서 3,000대 가까이 팔리는 성과를 거뒀다.

아우디의 든든한 지원 아래 개발된 무르시엘라고는 2001년 출시 이후 뛰어난 핸들링과 가속, 안전성을 선사해 슈퍼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디아블로와 마찬가지로 맹렬한 유명 싸움소에서 이름을 따온 무르시엘라고는 동급 대비 가장 빠른 스포츠카인 LP 640, 오픈카 버전인 LP 640 로스터 등으로 변화되며 람보르기니의 저변을 넓힌 모델로 평가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람보르기니가 페루치오의 손에서 떠났지만 여전히 출시 모델엔 황소 이름이 붙여진다”며 “페루치오가 슈퍼카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가 여전히 계승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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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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