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때 쫓겨난 살레
북부 후티 세력과 손잡고 내전
2016년부터 4만 4000여명 사망
#사우디ㆍUAE 주도 아랍동맹
이슬람 무장세력 계파가 개입
악명 높은 다국적 용병 들끓어
27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어린이들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내부를 들여다 보면서 놀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3년여에 걸친 예멘 전쟁 기간에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어린이 1,316명 가운데(2017년 말 기준) 사우디 공습 때문에 숨진 경우는 370명에 달한다. 사나=EPA 연합뉴스

예멘의 독재자였던 알리 압둘라 살레(2017년 12월 4일 사망) 전 대통령의 아들인 아흐마드 알리 압둘라 살레(이하 ‘아흐마드’)는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부친이 예멘 대통령으로 재임한 22년간(1990~2012) 통치 정당이었던 ‘총인민의회(GPC)’ 대표단도 그의 사우디행에 동행했다. 중동 이슈 전문매체인 ‘중동 모니터’에 따르면 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무하마드 빈 자이드 왕세자는 아흐마드에게 ‘사우디 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왕세자 즉위 1주년을 맞은 사우디의 무하마드 빈 살만과 UAE의 자이드 왕세자는 현 예멘 전쟁의 설계자들이다. 두 사람은 각각 사우디 국방부 장관, UAE군 최고부사령관이기도 하다. 당초 예멘 분쟁은 2011년 중동에 불었던 민주화 운동, 이른바 ‘아랍의 봄’ 여파로 2012년 2월 권좌에서 쫓겨난 살레 전 대통령이 이후 후티(Houthis)로 대표되는 북부 세력과 손잡고 남부로 진격하자 남부가 이에 저항하며 벌어진 ‘내전’의 성격이 짙었다. 그런데 사우디와 UAE가 주도하는 아랍동맹은 2015년 3월 예멘 사태에 개입하면서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의 ‘이란 개입설’은 상당히 과장됐다는 게 예멘을 집중적으로 다뤄 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아랍동맹의 개입이 이란을 끌어들인 측면이 더 크다는 뜻이다. 이렇게 내전에서 지역전으로 확대된 예멘 전쟁은 이제 3년을 넘겼다. ‘예멘 데이터 프로젝트’는 올해 사망자(6월 9일 기준)만 이미 1만명이 넘었고, 2016년부터 따지면 무려 4만4,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달 초 아흐마드와 GPC팀이 UAE와 사우디를 차례로 방문한 건 후티반군 영토에 있는 호데이다 항구에 대한 공세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살레 전 대통령 측 진영은 후티와의 ‘전략적 동맹’을 통해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과 대립했었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 살레가 사우디 편으로 기우는 조짐을 보이자 후티반군은 즉각 그를 살해해 버렸다. 이후 살레의 조카 타리크 살레는 UAE의 지원과 훈련을 받으면서 ‘전국저항군대(NRF)’라는 민병대를 조직, ‘반(反) 후티전선’에 가담했다. 실제로 UAE는 반 후티전선에 있는 각종 민병대를 지원해 왔다. 지난 13일 본격화한 호데이다 탈환작전 역시 UAE의 ‘작품’이다.

25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반군 지지자들이 정부군의 호데이다 항구 진입작전에 맞설 전사들을 모집하는 도중 총기를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반 후티전선은 ‘반군에 대한 반대 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정부군’으로 통칭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부 세력들 간 공통분모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우선 사우디와 UAE가 주도하는 아랍동맹이 있고, 이 동맹이 보호하겠다고 나선 현 만수르 하디 대통령 정부에 대한 충성파(주로 사우디가 지원)가 있다. 또 하디 정권에 반기를 들고 지난 1월 말 ‘준 쿠데타’까지 벌인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 세력(주로 UAE가 지원)도 이 전선의 일부다. 이에 더해 지난해 12월 살레 전 대통령 피살을 계기로 후티동맹에서 반후티동맹으로 선회한 ‘살레 진영’ NRF는 물론, 알카에다 연계 인물이 주도하는 살라피스트(이슬람 극단주의자) 조직까지 UAE의 비호 아래 다양한 세력들이 반후티전선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22일 예멘의 항구도시 호데이다에서 남서쪽 50㎞ 거리에 있는 알자흐 지역에서 수단 출신 용병들이 총을 들고 경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친정부 성향 군대에 가담해 후티반군 세력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알자흐=AFP 연합뉴스

이들은 호데이다 공세를 미리 준비한 듯, 지난 4월부터 홍해와 가까운 서부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들끼리 먼저 충돌하고 말았다. 4월 15일 남서부 항구도시 알 무카 지역에선 살레 진영인 NRF와 분리주의 진영인 ‘남부저항군’이 부딪쳤다. 남부저항군이 예멘공화국(통일국가)의 깃발을 찢은 게 발단이 됐다. 4월 25일에는 타이즈 지역에서 살라피스트 조직인 ‘카티이브 아부 알 압바스 여단’(이하 압바스 여단)과 무슬림 형제단(이집트에서 시작된 범이슬람권 정치운동) 연계 ‘알 이슬라’ 그룹이 맞붙었다.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계열이 한데 모인 게 화근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반후티전선에는 ▦압바스 여단(살라피스트) 대 알 이슬라(무슬림 형제단) ▦알 이슬라(통일파) 대 남부저항군(분리주의자) ▦남부저항군(분리주의자) 대 살레 진영 NRF(통일예멘 독재세력) ▦압바스여단(살라피스트) 대 남부저항군(세속주의자) 등의 대립 구도에 기인한 모든 충돌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

19일 예멘 정부군 소속 장갑차 등 군용 차량 행렬이 친정부군과 후티반군과의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인 서쪽 항구도시 호데이다로 이동하고 있다. 호데이다=EPA 연합뉴스

하지만 그동안 서방언론은 예멘 전쟁에 대해 ‘수니파(정부)와 시아파(반군)의 갈등’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시각으로 접근해 왔다. 이 프레임 덕에 예멘 전쟁에 직ㆍ간접적으로 개입해 온 국가나 개인들은 이곳에서 벌어진 인도주의적 재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예컨대 UAE 특전사 엘리트 부대로 알려진 ‘대통령 근위대’는 호주 퇴역장교 출신인 마이크 힌드마슈 소장이 이끌고 있다. 또 UAE 합동공군사령부의 최고사령관 역시 미국의 퇴역군인인 스테판 투마잔인데, 미 국방부 사이트에 그의 인터뷰나 훈련 관련 동영상이 게시돼 있다는 사실은 그가 단지 개인 자격으로 UAE 군대를 지휘하는 것만은 아님을 암시한다. 게다가 예멘 지상전을 주도하는 UAE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악명 높은 미 사설군사업체 ‘블랙워터’를 통해 소말리아와 수단, 콜롬비아 등에서 온 다국적 용병을 예멘 전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15년 12월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후티반군과 살레 진영 동맹군의 공격으로 블랙워터 용병 42명을 포함, 사우디 주도 아랍군 군인 8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한 건 단적인 예다.

무장 분쟁 지역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온 ‘무장분쟁 위치ㆍ교전 상황 데이터 프로젝트(ACLED)’는 21일자 보고서 ‘호데이타 전투의 시작’에서 난잡하기 짝이 없는 반후티전선에 2만1,000~2만6,500명가량이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그 반대편인 후티 진영에선 2,000~5,000명이 싸우고 있다.

주변 산유국들과는 달리 자원도 없고, 물마저도 희귀한 중동의 최빈국 예멘은 해묵은 내전 지형과 독재 정치로 이미 충분히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 3년여간 사우디와 UAE, 이란 등 지역 패권국들의 멈추지 않는 군사 개입은 이러한 예멘을 인도주의적 재앙으로까지 몰아넣었다. 뿐만 아니라 ‘군사동맹’ ‘연합훈련’이라는 이름 하에 중동의 패권 경쟁 세력을 훈련, 무장시키고 무기 판매에도 몰두해 온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도 오늘날 예멘의 비참한 현실에 눈감아선 안 되는 책임 국가들이다. 사우디와 UAE 등에 무기 수출을 늘리고 있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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