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골프클럽에서 휴식을 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일 편안한 복장 차림으로 신문을 가득 챙겨 들고서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저팔계 외교’에 당했다는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6ㆍ12 싱가포르 북미회담의 말잔치가 행동이나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불패의 북중 동맹’만 강화시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저팔계 외교는 최근 출간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나오는, 김정일 위원장이 훈시했다는 실리 외교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처럼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 미련한 척’하면서 온갖 추파를 던져서라도 잇속을 챙기는 북한의 생존술이다.

▦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후 “26세에 권력을 승계해 국가를 터프하게 운영해온 그를 신뢰한다”며 “상황을 잘 헤쳐온 그는 유능하고 성격도 좋다”고 칭찬했다. 트럼프는 엊그제도 “김 위원장은 똑똑한 터프가이이자 위대한 협상가”라며 “우리는 케미스트리(궁합)도 잘 맞는다”고 재차 치켜세웠다. 부시ㆍ오바마 시절 발효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1년 연장하는 채찍과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 추가 중단이라는 당근을 함께 제공하면서다. 같은 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미 모두 레드라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의 말도 비슷하다. 최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김 위원장에 대해 “젊은 나이와 달리 상당히 솔직담백하고 침착한 면모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연장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주 예의바른 모습도 보였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두 사람끼리 믿고 맞춰본 ‘속궁합’이 없다면 말하기 어려운 얘기다. 시진핑 주석 역시 3차 북중 회담 후 “두 나라는 관계의 불패성을 전 세계에 과시하며 벗과 동지로서 사회주의 위업의 미래를 공동으로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강한 신뢰를 표시했다.

▦ 강경파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김 위원장의 고난도 저팔계 외교에 한ㆍ미ㆍ중 정상이 모두 넘어갔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미국 조야에서 비핵화 시간표(timeline)를 명확히 하라는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엊그제 한 북한 선전사이트엔 “불가역적인 완전 비핵화(CVID)를 짖어대는 사대 매국노는 민족역적”이라는 글도 게재됐다. 하지만 남북 판문점 선언, 북미 싱가포르 합의의 요체는 ‘선 신뢰 구축-후 비핵화 및 보상’이다. 영리하고 터프한 김 위원장이 과거의 술수와 잔꾀로 이 트랙을 벗어나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믿음이 필요한 때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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