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 술주정뱅이 아버지 원망하다
미국으로 홀로 와 간호사 근무
화목한 가족 출신 남편과 결혼
# 시누이 탓에 부부 갈등 시작
“남편 뒤에서 조종” 취급 받기도
상담치료도 받았지만 그때 뿐

미국으로 이민을 와 직장을 다닌 지 10년째입니다. 8년 전 이곳에서 결혼해 7세, 4세, 11개월 세 아이가 있어요. 친정 식구들은 한 명도 없이 시댁 식구만 차로 20여 분 거리에 모두 모여 살고 있어요. 처음 3~4년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댁과의 갈등으로 아이들을 집에 두고 한 달 째 집을 나와 있어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에 너무 힘들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과 다시 살자니 숨 막히고 억울합니다.

어릴 적 저희 집은 별로 화목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자주 심하게 싸웠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두고 술주정뱅이 무능력자라고 했어요. 매일 밤 이불을 덮어쓰고 기도했습니다. 제발 두 분이 헤어지게 해달라고요. 아니면 이 싸움이 끝날 수 있게 제발 우리 아빠 좀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고요. 학창시절 아빠가 자살하겠다며 음주사고를 낸 적이 있어요. 그 때 아빠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할 정도였어요. 제게 위로가 되어주는 건 언니뿐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운 좋게 직장을 얻게 됐어요. 저는 결혼 전부터 일하던 병원에서 계속해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남편 가족은 저희 집과는 정말 달랐어요. 시부모, 고모, 작은어머니, 작은아버지, 사촌 여동생, 사촌 남동생과 그 여자친구 등등. 퇴근 후면 늘 누군가 저희 집에 있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를 남편 가족들이 예뻐했고, 저는 계속 예쁨 받기를 원했어요.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갈등은 남편의 여동생이 외국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됐어요. 제겐 한 살 어린 시누이입니다. 결혼 후 남편은 시부모님 뜻에 따라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습니다. 시누이는 당분간 남편을 따라 가게를 돕기로 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어릴 때부터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남편을 못 미더워하며 시누이가 곁에 있길 바란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남편이 보란 듯이 성공하길 바랐고요.

처음 일년간은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종업원 몇 명이 쉬지 않고 가게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시누이는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다, 일이 너무 과도하다며 6개월이 멀다 하고 가게를 그만 둔다고 했어요. 일이 너무 많다고 한 후에는 메뉴 개발한다, 서류 정리한다며 집에서 일을 하더군요. 시누이를 대신해 제가 직접 재료를 사러 가기도 했어요. 시누이에게도 열심히 좀 하라고 했더니 그 말이 화근이 됐나 봐요. 그 후로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졌어요. 시누이는 메뉴에 바나나를 넣는 것조차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남편은 그런 동생을 다 받아주고 참아왔어요.

가게를 그만 둔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온 시누이를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남편을 뒤에서 조종하며 이혼으로 협박하는, 평화로운 시댁 식구 사이의 미꾸라지 같은 취급을 받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는 시누이에게 ‘네가 없이 오빠가 가게를 어떻게 혼자 하냐’ 하시고, 제게는 ‘시누가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으니 너희가 이 아이를 받아줘야 한다’고 하시며 서로를 설득하세요. 또 시누가 20대 초부터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아픈 환자라 여기고 이해해달라고도 하십니다.

남편은 시누와 아내 사이에서 힘들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 셋째를 낳고 퇴원하는 날이 큰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뮤지컬을 보러 갈 시누이를 대신해 가게에 들어가야 한다며, 저보고 혼자서 집에 가라고 하더군요. 서러움에 펑펑 울었고, 남편은 미안했는지 집에 데려다 줬어요. 시누이는 남편이 늦었다며 한바탕 했던 것 같아요. 시누이는 아직도 제가 남매 사이를 갈라놨다고 믿습니다.

남편이 가게를 아예 그만 두고 멀리 이사 가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다른 주에 가서 어떻게 생계를 꾸릴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시누이와 휴가를 가려고 하는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터질 거 같아 또 다시 가출을 하게 됐어요.

미국에서 부부대화법 상담치료를 받아본 적도 있어요. 서로의 성격과 가정문화 차이를 인식하고 남편도 가장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때뿐이고 시댁과의 갈등이 계속 됩니다. 남편과의 관계 회복을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아이들 때문에 죄책감이 큽니다. 시댁식구들이 가득한 이 상황에서 남편과 재결합을 해야 할까요?

배승연(가명ㆍ38ㆍ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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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하게 의존적인 남편 가족들
심성 착하지만 시누이 대응할 땐
좋은 방법 없이 다 맞춰주기만
# 반복된 갈등으로 좌절감 클 것
시부모ㆍ시누이로부터 분가 절실
결혼 초 행복했던 관계로 노력해야

승연씨의 사연을 읽으며 가슴이 갑갑해졌어요. 승연씨가 처해 있는 상황이 승연씨를 얼마나 답답하게 느끼게 할지 와 닿았기 때문이에요. 갈등의 핵심이 된 시누이와 승연씨는 정반대의 사람인 데다가 누구보다 승연씨의 편이어야 할 남편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그 동안 자신의 삶을 의지로 일궈 온 승연씨가 또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마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지금 승연씨의 상황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어요. 승연씨 개인이 가진 특성과 남편 개인의 특성, 그리고 남편 가족들의 특성 모두가 그 원인입니다. 승연씨는 문제가 생기면 상황해결을 위해 항상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냅니다. 하지만 승연씨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순간 그 상황 자체를 손에서 놓아버리는 듯해요. 작은 암세포는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몸을 덮어버려요. 승연씨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암세포를 떼어내듯이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떼어내 버리는 거예요. 승연씨의 가출은 도망가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궈 온 것처럼 주도적으로 문제 상황을 버려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방의 말이 비논리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납득이 안 되거나, 혹은 상대방이 억지를 부린다면, 고군분투하던 승연씨에게 그 사람은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가 될 뿐이에요. 가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승연씨가 어릴 시절 ‘차라리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승연씨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누군가를 죽이려는 마음을 먹지 않아요. 도저히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됐을 때, 무기력해진 승연씨는 모든 걸 놓아버려요. 그래서 승연씨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어요. 지금은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면 가출을 하게 되고요.

승연씨는 독립적이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와서 삶을 일궜어요. 그런데 미국 땅에서 한국보다도 더 끈끈하게 얽혀있는 남편의 가족들을 만났어요. 단순히 관계가 좋은 가족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과하게 의존적이고 비독립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정 가족들과는 정반대인 남편 가족들에게서 승연씨도 처음에는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고, 아이들도 돌봐주는 남편 가족들에게 승연씨도 잘 하려고 노력했어요. 낮에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가게 일을 도울 정도로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시누이라는 존재가 문제가 됐어요. 사연만으로 판단하기엔 섣부를 수도 있지만, 승연씨 시누이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을 가졌고, 인격 구성에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만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에요. 남편 가족들은 심성이 착하지만, 시누이에 대해서는 좋은 대응방법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시누이가 모든 걸 자기 자신에게 맞춰야만 하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더 큰 갈등을 피하자는 심정으로 지금껏 시누이에게 다 맞춰줬습니다. 반대로 승연씨는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에게 맞춰준 적이 없어요. 그저 자신의 의지로 삶을 만들어 온 오뚜기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승연씨 입장에서 시누이와 시댁 가족들이 지극히 비상식적으로 보일 거예요.

저는 그 심정이 승연씨가 예전에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된 어린 승연씨가 너무 가여워요. 그건 부모의 잘못이에요. 그런데 승연씨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자신을 원망하며 두렵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어요. 그 감정이 시누이로 인해 되살아났어요. 승연씨는 아버지에게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지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순간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끈끈한 시댁 식구들은 독립적으로 살아 온 승연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결국 끝에는 승연씨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요. 아버지로 인해 느꼈던 감정과 같은 맥락이에요. 아무리 형편 없는 아버지라도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진절머리 나는 감정을, 시누이로 인해 다시 느끼게 될 바에는 ‘차라리 가족을 떠나겠다’고 또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시누이는 밉고, 적대감이 들지만 승연씨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미국에 정착하는 건 승연씨의 노력으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시누이와 시부모 사이의 관계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다는 암담함에 처해 있어요. 게다가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벽에 부딪혀 모든 걸 그만 두려다가도, 집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가족들이 다시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마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갈등으로 저는 승연씨의 좌절감과 분노가 엄청 클 것이라고 생각해요.

승연씨 남편은 착한 사람이지만 이런 점에서는 무능합니다. 착한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돼요.

게티이미지뱅크

승연씨 가족은 시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누이와 멀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갈등이 더 심해져 승연씨가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거라고 봐요. 승연씨와 남편, 그리고 세 아이의 행복을 위해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시누이와 떨어져야 해요. 가족의 경계를 다시 설정해야 해요. 시누이와는 일 년에 한 두 번만 만나는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아요. 시부모와는 시누이와 얽히지 않을 선에서 경계를 지어야 하고요. 시어머니 역시 나쁜 의도로 승연씨에게 시누이를 이해해달라고 한 건 아닐 거예요. 승연씨는 시어머니의 진심 어린 조언 중에서도, 시누이와 가까운 곳에 산다거나,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과 같은 관계를 단절해야 합니다.

남편을 설득하는 것도 승연씨의 몫이에요. 승연씨와 남편이 생각하는 가족 개념이 달라요. ‘가족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건 좋게 보면 가족애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개개인이 독립적인 한 성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남편에게 천륜을 끊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승연씨와 세 아이를 위해 시누이와 만남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남편을 설득해 보세요. 사업을 같이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건 다섯 식구에게 좋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 해야 해요. 남편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남편은 승연씨에게 이미 상처와 피해를 줬어요. 남편도 그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남편의 인생에서 중심이 되는 가족은 이제 승연씨와 세 아이들이에요. ‘동생인데 어떻게 안 보고 살아’가 아니라 동생임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배우자인 승연씨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걸 남편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처음 결혼한 뒤에 행복했던 가족관계를 기억하면서 남편에게도 노력해보자고 이야기해 보세요.

저는 승연씨가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간 상황도 이해가 됩니다. 성인으로서, 정신과 의사로서 승연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걸 아이들에게 바라선 안됩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냥 ‘엄마가 우릴 두고 집을 나갔다’는 상황이 전부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승연씨가 절대 아이들을 두고 가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집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몸을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또 다시 견딜 수 없게 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세요. 하지만 그 정도로 견딜 수 없다면 차라리 이혼 준비를 차근히 하는 게 낫습니다.

승연씨는 머나먼 타향에 정착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발전적인 방향으로, 대체로 좋은 쪽으로 잘 이끌어 왔어요. 저는 지금까지 승연씨의 삶을 격려해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 힘을 다시 발휘해서 잘 헤쳐나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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