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폭수 인수전에 뛰어든 컴캐스트에 대한 할리우드 리포터 보도. 할리우드 리포터 지면 캡처

팔기 위해 집을 내놓았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 적당한 가격에 매매 계약을 했다. 이후 다른 사람이 현금 다발을 흔들며 ‘악마의 유혹’을 건넨다. “기존 매매금보다 더 후하게 가격을 쳐 드릴 거고, 위약금도 대신 내드리겠습니다.” 누구나 마음이 흔들릴 만한 제안.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 21세기 폭스(폭스)가 그런 달콤한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연말 미국 월트 디즈니(디즈니)가 폭스의 영화와 TV 주요 부문을 524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세계 미디어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 지칭되는 두 기업의 결합은 세계 미디어 산업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당시 미국의 연예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여우를 삼킨 후 여우 꼬리가 입 사이로 튀어나온 미키 마우스 그림을 표지에 실으며 이 소식을 전했다. 미키 마우스는 상징과도 같은 반달모양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사라질 일이 최근 벌어졌다. 미국의 최대 케이블업체이자 인터넷망 사업자로 할리우드 메이저 유니버설과 지상파방송 NBC를 보유한 컴캐스트가 뒤늦게 폭스 인수에 나섰다.

컴캐스트가 제시한 인수 가격은 650억달러다. 화끈하게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고, 디즈니에게 줄 위약금까지 감당하겠다는 입장이다. 폭스는 디즈니 인수 건 승인을 위해 다음달 7일 이사회를 열 계획이었는데, 셈법이 달라지게 됐다.

컴캐스트는 케이블 가입자만도 2,200만명에 달한다. 더 이상 미디어 기업을 인수합병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컴캐스트가 폭스를 유독 탐내는 이유는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 훌루다. 미국에서만 가입자 3,000만명을 거느린 훌루의 주식을 폭스와 디즈니가 30%씩 보유하고 있다. 디즈니는 훌루 주식을 60%로 늘려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폭스 인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디즈니와 컴캐스트가 훌루 지분에 목 매는 건 세계 최대 OTT 넷플릭스(가입자 1억2,500만명) 때문이다. 이들은 OTT 사업에 진출해 넷플릭스의 질주를 막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세계 미디어 업계의 화두다. 넷플릭스가 영화와 TV 등 동영상 부문 세계 최강자가 될 것인지, 전통 미디어가 수성에 성공할 것인지, 아마존 프라임 등 경쟁 OTT가 시장 지배자가 될 것인지 등이 뜨거운 관심사다.

넷플릭스가 촉발한 지각변동에서 한국 시장도 자유롭지 않다. 국내 3위 IPTV업체인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를 시도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가입자는 추가 이용료를 내고 넷플릭스 콘텐츠를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위기감을 느낀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해외 거대 자본이 유리한 거래 조건으로 한류 시장을 송두리째 먹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는 국내 최대 미디어 기업인 CJ E&M와 지상파 방송 계열사 등이 주축을 이룬다. CJ E&M와 롯데컬처웍스가 최근 OTT 사업 진출을 선언했지만 미디어 산업 변화에 따른 구색 맞추기 인상이 강하다.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츠에만 8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9조원 가까운 돈이다. CJ E&M(지난해 매출 1조7,500억원 가량)의 5년 매출액에 해당한다. 한국 기업이 돈으로 넷플릭스에 맞서기에는 힘겹기만 하다. 대형 통신업체와 방송사의 합종연횡이 필요할 텐데 방송과 통신을 나눈 칸막이가 높고도 두껍다. 규제가 풀린다고 달라질까. 몇 년 전 한 대형 통신업체 관계자의 말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그룹에서 콘텐츠 사업은 비주류에 해당한다. 담당 임원이 굳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칠 이유가 없다.” 종합편성채널(종편) 신설로 국내 방송시장은 이전투구의 장이 된지 오래다. 한국 영상 시장은 거대 자본의 공습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찻잔 밖에서 거대한 태풍이 몰려 오고 있는데 찻잔 속은 너무나 태평하다. 컴캐스트의 폭스 인수 시도를 보고 있자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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