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는 98.5%가 비슷하다고 한다. 각 그룹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둘 사이의 공통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가 봐도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만 보아도 인간과 98.5%의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즉 유전자 1.5% 차이가 인간과 동물을 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침팬지 우리 곁을 지나노라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녀석을 그냥 지나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성인 열 사람 이상의 괴력을 지닌 데다 언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선입견 때문에 함부로 다가가지는 못한다. 대신 바깥 철창 너머에 서서 바나나로 유혹해 그 둔탁한 손을 살짝 만져 본다든지, 친밀한 척한다고 쑥 내민 입술에 가만히 손가락을 접촉해 보기만 한다. 만일 운이 좋아 어린 침팬지 한 마리를 안아 키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자식 못지않게 키울 자신이 있다.

침팬지와 인간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각 그룹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점이다. 어느 그룹은 코코넛 야자열매를 까먹는 데 돌을 사용하고 심지어 그 돌을 알맞은 연장으로 다듬어 쓰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문화는 대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다른 침팬지 사회는 눈앞에 뻔히 보이는 맛있는 코코넛을 어떻게 먹어야 될지 몰라서 그냥 내버려 둔다.

대다수의 동물들은 각자의 문화를 갖고 이를 대대손손 이어간다. 코끼리 역시 죽은 동료에 대해 코로 톡톡 만져 애도하는 장례의식을 가지고 있고, 고래들도 서식지마다 각자 독특한 사냥법을 만들어 가지고 있다. 새들도 누가 독특하고 멋스러운 둥지를 짓기 시작하면 후손들이 이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동물들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유행시키기도 한다. 일본원숭이 '이모'가 바닷물로 흙 묻은 고구마를 씻어먹는 행동은 곧 다른 일본원숭이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이 사진은 이모와 관련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와중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유행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일본원숭이 ‘이모’의 이야기이다. 이모는 바닷물로 흙 묻은 고구마 씻어먹기를 최초로 시도한 원숭이였고 이 획기적인 시도가 전 일본원숭이에게 전파되는 데는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인간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인기 있는 유행의 급속한 전파 현상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문화전파는 학자들의 연구에서만 관찰되는 건 아니다. 우리 동물원 역시 해마다 특이한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한 둘은 꼭 나타난다. 어느 날 돼지꼬리원숭이 새끼 한 마리가 철창 틈으로 나와 원숭이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곳에 모여 사는 다른 종의 원숭이들 사이로 급속도로 전파되어 일본원숭이 새끼들도 따라 하게 되었다. 그전에 일본원숭이들은 새끼를 많이 낳아 길렀지만 한 번도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었다.

원숭이들만이 아니다. 전혀 말을 못 하던 앵무새 곁에 말 잘하는 앵무새를 함께 놓아두었더니 금방 말을 따라 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새가 더 말을 잘하고 처음 말을 가르쳤던 새는 조용해졌다. 얌전하던 바바리양 한 마리가 높은 담을 뛰어넘기 시작하자 다른 녀석들도 그 짓을 따라 하고 있다.

은여우 우리에 우연히 뱀 한 마리가 들어간 일이 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의 충격처럼, 두 마리는 상대방을 공격하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간혹 문화충돌 현상도 발생한다. 은여우 우리에 우연히 바깥에 살던 뱀 한 마리가 들어갔는데 이 두 동물은 서로 쳐다보고 당황하여 공격하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바로 새로운 문화충돌 현상이다.

제 무리의 손에서 자라지 못한 침팬지 대원이는 암컷과 사귀지 못하고, 되레 그들의 등쌀에 못 이겨 다른 동물원에서 우리 동물원으로 피난해 왔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손에 길러지다 보니 가슴 아픈 문화 왜곡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동물원에는 대원이라는 이름의 20세 수컷 침팬지가 있다. 애칭은 판치다. 워낙 험상궂게 생겨 아이들은 보통 고릴라라고도 많이 부른다. 하지만 그 녀석은 보기와 달리 다른 동물원에서 암컷 두 마리의 등쌀에 못 이겨 우리 동물원으로 그야말로 ‘피난해’ 왔다. 그 당시 8세의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이었고 건강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 정도면 작은 암컷 한두 마리 정도야 문제없이 다룰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노회한 암컷들에 비해 경험과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만일 야생의 침팬지 사회였다면 그 사회의 금기와 관습 때문에라도 감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원이나 그 두 마리 암컷 침팬지 역시 동물원에서 사람 손 대신 자기 부모와 무리들에 의해 키워졌다면 학습을 통해 성성숙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상태에서는 서로 연인이 되었을 상대방을 천적처럼 대하고 심지어 쫓아내기까지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 중에는 제 무리의 문화를 학습하지 못하는 개체가 있다. 심지어 인간의 문화에 동화되는 경우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같은 현상은 야생에서 무리 생활하는 동물들을 동물원에 두었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생식불능 상태에 빠져 버린다. 물론 호랑이나 표범과 같이 단독 생활하는 동물들은 이 같은 혼선을 피해 갈 수 있겠지만, 돌고래나 물개 같은 인간에게 쉽게 동화되는 동물들은 자기 종족들보다 인간을 더 사랑해 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억지로 갇힌 동물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왜곡된 문화현상이다.

동물들에게 문화나 감정이란 말을 감히 붙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찬란한 문화의 시작도 단순하지만 새로운 것의 무한 반복과 학습으로 이루어 온 것이다. 아직도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의 문화는 동물들의 문화 전파 속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들의 문화 전파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중간에 쉽게 끊어지기도 하지만, 문화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닌 동물들에게 있어서도 바로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글ㆍ사진 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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