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유코 일본 중의원(전 경제산업장관)

이웃 일본에선 정치인의 스캔들 위기를 선거를 통해 모면한 사례가 왕왕 있다. 오부치 유코라는 자민당 소속 여성 정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85대 일본 총리를 지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거물 정치인 오부치 게이조(1937~2000년)의 딸인 그는 부친의 급사로 갑자기 선거판에 뛰어들어 26세에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34세에 장관으로 입각하는 등 탄탄대로 입지를 걸어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4년 40세가 된 오부치를 경제산업장관으로 발탁한 데 이어 자민당 당내 서열 2위인 간사장 직책까지 맡기려 했다. 차세대 여성 총리후보로도 거론됐다.

한 주간지가 정치자금 부정지출 의혹을 보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보도 내용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정국 운영에 부담을 끼칠 정도로 여론은 싸늘했고, 결국 두달 만에 낙마했다. 오부치는 곧이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자민당은 선거가 부정지출 스캔들을 잠재웠다며 환호했다.

실제 이어진 수사에서 검찰은 오부치의 정치자금 회계 업무를 맡은 전직 비서 2명을 정치자금규정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으나, 오부치 본인은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아베 총리 역시 자신의 스캔들을 무마시키는 데 선거를 이용했다. 우익성향 모리모토 사학재단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배경에 아베 총리가 간여했다는 의혹이 지난 해 일자 국회를 해산, 총선거 과정을 거쳐 재집권했다. 선거 이후 사학재단 스캔들은 잠잠해졌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두 사례는 선거 승리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얻은 만큼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너무도 많은 불씨가 남아 있다.

오부치의 사례를 두고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검찰이 꼬리 자르기식 봐주기 의혹이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 정치 전면에서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중의원 선거 대승으로 꺼진 듯 했던 아베 총리의 사학재단 스캔들 불씨도 올해 또 다른 의혹들이 불거지며 예전보다 거세지고 있다. 3달 앞으로 다가온 자민당 총재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경우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접어야 하는 최대의 위기로 내몰렸다.

아베 총리도 오부치도 “그때 좀 더 제대로 잘못했다고 사과할 걸”하는 때늦은 뉘우침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는 통에 더 큰 정치적 시련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드루킹 사건, 여배우 스캔들 등 최근 끝난 6ㆍ13 지방선거에서 도백이 된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을 둘러싸고 선거 기간 제기된 의혹이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일부 당선인은 선거에서 지지를 얻었으니 의혹은 해소된 거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 당이 가만 내버려둘 리 만무하며, 비(非)지지자, 심지어 일부 지지자마저 진실을 알고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어떻게든 직무를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꺼림칙함이 남아 있는 한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앞선 두 일본 사례에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시장은 거침없는 언변과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이른바 ‘사이다 정치’로, 한때 차기 총리주자로 손꼽혔다.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한 주간지가 보도한 불륜스캔들로 위기에 몰렸다. 하시모토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는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었다”며 “철딱서니 없던 시절 저지른 잘못”이라며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후 이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었다.

드루킹과 여배우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는 해결책은 정면돌파다. 의혹에 한치의 부끄럼이 없다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고발하거나 정식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반면 당사자들이 조금이라도 거짓을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사과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좋다. 정직보다 나은 방책은 없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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