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사전투표일 첫날이었던 지난 8일. 내 손에 들린 투표용지는 총 일곱 장이었다. 시의원과 교육감 후보, 비례대표로 뽑을 정당은 결정한 상황이었지만, 나머지 세 장이 문제였다. 나와 같은 경기도민에게 이번 도지사 투표는 특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택하는 일을 꾸준히 거부해온 내게 대안은 대체로 군소 진보정당이었지만 이번에는 ‘찍을 사람이 없다’는 의견을 분명히 표시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투표장 안에서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결국 선택한 방법은 바로 아무도 찍지 않는 것,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투표가 아닌 방식의 정치적 의사 표현 방법이 많지 않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권이 정치적 의사 표현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효표는 투표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직접 투표소에 가면서도 한 표의 값어치를 무효화 시키는 것이기에 기권과는 다르다. 어떤 면에서 무효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 누가 됐든 표를 준다거나, 당선자를 뽑지 않은 모든 표를 사표로 간주하는 이상한 방식의 정치 혐오보다 훨씬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다.

출구조사 결과보다는 개표가 끝난 뒤를 기다린 것은 이 때문이다. 과연 경기도지사 투표용지 중 무효표는 얼마나 나왔을 것인가? 결론은 유효투표수의 1.8%인 10만9,000여 표였다. 2.9%의 무효표 수가 나왔던 2014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절대적인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논란에도 불구하고 찍을 사람을 다 찍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현 시점에서 경기도지사 투표의 무효표 수를 다른 지역과 비교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서의 무효표는 유효투표수의 5만7,000여 표로 유효투표수의 1.2%였다. 단순 숫자로도, 비율로도 유의미한 차이다.

나는 기사화가 되기도 했던 ‘#투표용지에_여성정치인’ 해시태그 운동이 얼마만큼의 무효표를 만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실제 무효표 숫자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운동은 광역단체장 8.5%, 기초단체장 4.7%에 불과한 여성 후보 비율을 유권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히는 정치적 의사 표시 방법이다. 단 한 명의 여성 당선자도 없는 광역단체장 후보 사진을 보면서 여성인 나를 위한 정치를 해줄 사람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여성들이 앞서 낸 목소리다. 유효투표수가 만들어 낸 결과에 주목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치권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무효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온통 파란색에 한 지역만 붉게 칠해진 지도를 바라보며 내리는 해석은 제각각이다. 누구에게는 10여년 전과는 다른 결과로 현 정권에 힘을 실어준 가슴 벅찬 ‘국민의 승리’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지도가 준엄한 국민의 심판이고, 회초리이고, 자신의 소임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순간을 의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에 사는 30대 비혼 여성인 내가 그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은 거의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글자만 들어가 있어도 그 포스터를 훼손하고 싶어하고, 젊은 여성의 또렷한 시선을 ‘시건방지다’고 여기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시에 이런 사회에 살면서도 지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청소년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다. 나 또한 행동하며 계속 투표할 것이므로 이 고민의 결과가 진짜 무효로 남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첫 무효표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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