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노인들의 사회] 부모 모시며 자녀 양육한 노년층

#1
“키워서 시집, 장가 보냈더니
오직 자기 새끼들밖에 몰라”
#2
“애들도 어른 공경 안 해 문제
젊은 세대의 무시ㆍ냉대에 반감”
#3
“그저 우대 받을 생각하면 안 돼”
노년층서도 변화ㆍ자성 목소리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현재 노년층이 겪는 분노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이념의 간극도 크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도 노인들이 살아온 시대와 현재의 가치관이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생한 세월만큼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존중을 바라는 노인들과, 나이를 내세우는 관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노인들의 쓸모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분위기는 갈등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한국 고령자의 연령차별 경험과 노년기 인식 질적 연구’(김주현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27명의 65세 이상 노인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면접 대상자들은 나이 듦에 대한 인식과 노후에 대한 불안 및 지위와 역할의 변화로 인한 내적 변화에 직면해 있고, 가족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시ㆍ소외ㆍ기피 등을 경험하면서 체념, 수용ㆍ이해, 거부, 분노의 반응을 보이며 고령자의 설움을 나타냈다.

우선 과거 자신의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자녀들을 키워냈던 이들은, 지금에 이르러 자신들은 자녀들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컸다. 면접자 O씨(남ㆍ70대)는 “많이 달라졌다”며 “우리 손자들을 보면 어른을 모른다. 애미, 애비도 지 새끼밖에 모르고. 그게 문제다, 그게”라고 했다. 면접자 V씨(여ㆍ70대)는 “내가 30, 40년을 혼자 살면서 다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그 억울함을 자식들이 그런 걸 잘 헤아리지 못하고 하니깐, 그런 거에서 서운함이 많다”고 했다. G씨(여ㆍ70대)도 “아들 도움도 받고 효도 받을 줄 알았지, 누가 뭐 이런 일이 닥칠 줄 알았나”고 했다.

가족 밖, 사회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비슷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면접자 L씨(여ㆍ60대)는 “(예전에는) 어른한테 공손하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핵가족이 되고, 물질 만능 시대라서 어른 공경을 모르고 사회적으로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W씨(여ㆍ80대)는 “이 나라를 이끌어 온 게 다 윗세대인데 이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다. L씨(여ㆍ60대)도 “나이를 괜히 먹었겠나? 밥을 먹어도 몇십 년은 더 먹고 사회생활도 더 많이 했다”며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드신 분들이 똑같은 것을 놓고 볼 때 이해가 틀리다, 괜히 나이 먹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대접을 못 받는 상황 너머 노인들에 대한 이해 부족 속에서 무시와 냉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면접자 A씨(여ㆍ60대)는 “젊은이들 눈에는 ‘왜 젊은 사람들 출근 시간대에 너희(노인)들이 타서 우리 불편하게 하느냐’ 하는데 이거 편견이다”라며 “노인들도 열심히 자기네들 일하러 가는 거다”고 말했다. V씨는 “엄마는 그런 거 몰라도 된다 그런 식이다, 그래도 궁금하잖아. 우리는 자꾸 알고 싶은 거야”라며 “우리가 얼른 못 알아들으면 두 번 세 번 대답을 안 하는 거, 그게 참 무시하는 거다”고 못마땅해했다.

J씨(여ㆍ60대)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잠깐 휴식시간이나 특히 점심시간, 커피 한잔 마실 때, 젊은 친구들이 아무도 내 곁에 안 오고 왕따였다”며 “가장 나이가 많으니까, ‘커피 한잔하실래요’라고 말하는 젊은 친구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B씨(여ㆍ70대)는 “아들이 (컴퓨터 등을) 건들지 말고 가만 놔두래. 내가 건들긴 뭘 건드려. 속으로 울었지만 남에게 그런 흔적(티)은 안 낸다”고 말했다. C씨(남ㆍ70대)도 “직원들이 우리(노인들)한테는 말을 안 한다. 뭐 그런 걸 알려고 하느냐. 우리한테는 일체 이야기 안 한다”고 했다. 일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R씨(여ㆍ70대)는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내가 무료라도 여기서 상담역을 해주겠다 그래도 싫다고 한다”며 “어느 한 곳도 나이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 사람의 능력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그런 것만 가지고 받아들이는 데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L씨(여ㆍ60대)는 “내가 아이들에게 이만큼 주고, 없으면 못 줄 것 같으면 주지 말아야 한다”며 “예를 들어서 몸이 아파서 양로원에 들어갈 돈은 챙겨놔야 자식한테 걱정을 안 주고, 그렇지 않으면 설움 덩어리, 구박 덩어리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Z씨(여ㆍ60대)도 “노인들은 우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젊은 아이들 똑똑하고 좋다, 노인들이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J씨(여ㆍ60대)도 “지난날에 비해 좀 노여움은 생기던데 뭘 노여워하나 스스로 달랜다”며 “먼저 다가가야 된다. 대접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인복지, 고령정책 분야 전문가인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우리 사회는 경제ㆍ문화적으로 급격하게 변해왔다”라며 “그 과정에서 노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적절하게 대우했는가를 봤을 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성향을 가지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 부원장은 이어 “우리나라는 노후소득보장 제도도 굉장히 늦게 도입됐다”며 “노인들의 분노를 지적하더라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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