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난민을 돕는 사람들

시리아 난민들은 창문도 없는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8개월을 갇혀 지냈다. 어필 제공

돌아가면 죽음뿐이다. 반군의 손에 죽거나, 굶어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자살하거나. “총을 드는 것보단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목을 맨 청년도, 먹을 것이 없어 자녀 셋을 제 손으로 죽이고 자살한 가장도 있었습니다.” 4년째 전쟁 중인 그곳에 삶이란 없다. 태어난 땅을 버리고 동쪽 끝 낯선 나라의 섬까지 흘러 온 건, 오직 살기 위해서다. 그렇게 예멘의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어렵사리 도착한 제주는 따뜻한 보호처가 아니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법무부가 지난 1일 제주 무사증 입국 불허 국가에 예멘을 추가했죠. 그보다 앞서 예멘 난민들의 거주지역을 제주도로 제한해버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섬 안에 갇힌 셈입니다.” 발이 묶인 500여 명은 한 달 만에 노숙인 신세가 됐다. “불법체류를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고향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만이라도 머물게 해주세요. 힘든 일이라도 가리지 않겠습니다.” 가짜 난민이 아니냐는 의심, 잠재적 범죄자라는 섣부른 낙인 속에 이들은 오는 20일 한국땅에서 ‘세계 난민의 날’을 맞는다.

지난달 27일 예멘 서부 아덴 부근의 난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불리는 ‘예멘 내전’은 2015년 3월 시작된 이래로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예멘 국적 난민들 19만 명 이상이 자국을 떠나 해외로 피신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의심이 아닌 보호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들의 편에 선 사람들이 있다. 난민과 이주민을 대변하는 법률가들의 모임 ‘공익법 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미등록체류민들을 도와온 비영리 단체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다. “예멘인들은 ‘아시아에서 우리를 받아줄 유일한 나라’로 알고 한국을 찾았죠. 실상은 난민 신청자 100명 중 단 3명도 제대로 된 난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인데 말입니다.”

1992년 세계 난민 협약에 가입한 후, 국제 사회에서 공식 난민 보호국이 된 지 27년. 과연 우리나라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 이지빈 인턴 PD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난민, 그들은 어디에…

“2015년 사진 한 장이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죠. 차디찬 겨울 해변에 잔뜩 웅크린 채 떠밀려 온 세 살배기 쿠르디의 모습이요. 그 때부터 저희가 하는 일에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시더군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한국에도 난민이 있어요?”(김세진 변호사)

난민은 있다. 심지어 많다. 작년 한 해만 만 명에 가까운 난민이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난민 지위’를 요청했다. 1994년 이후 한국을 거쳐간 난민의 수는 무려 3만 2,000명, 비공식 숫자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그중 정부가 난민 지위를 인정한 사람은 고작 800명 남짓이죠. 25년 동안 말입니다.”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한국의 실상은 난민 보호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UN 난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난민 보호율은 100위권 밖. 국가경쟁력 30위권의 ‘준선진국’의 민낯이다. 그러니 “한국에도 난민이 있느냐”는 물음엔 이유가 있다. 이 땅에서 난민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난민을 결정짓는 기준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아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사회집단 구성원신분의 차이로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누구나 난민이 되죠.” 같은 기준인데 유달리 한국에서만 난민 인정을 받는 과정이 혹독하다. “아프리카 수단의 한 대학교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토론클럽을 운영하던 대학생들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벨기에로 건너간 멤버들은 무사히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우리나라로 온 ‘리더’는 끝내 난민인정을 받지 못했죠.”

공익법센터 어필의 변호사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세진 변호사다. 어필 제공

법무부의 단골 사유는 대체로 추상적이다. 예를 들면 ‘특별하게 중요한 정치적 활동을 주도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도움을 요청한 난민 중에 오랜 독재국가에서 오신 분이 있었어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고문까지 당했는데, 석방된 후 이어지는 감시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망친 거였죠.” 이 난민 역시 주요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1ㆍ2차 불인정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 지금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난민협약에서 보호하는 ‘정치적 활동의 자유’가 언제부터 특정 정치인에게만 허락됐나요. 심지어 시민이 든 촛불로 혁명을 이뤄낸 이 나라에서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유가 충분한 사람들도 난민 신청을 꺼린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인정을 받는 경우는 극소수니까요. 게다가 본국 경찰로부터 체포를 당한 적이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선 정부에 서류를 요청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죠. 요구하는 증거들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에요.” (김대권 대표) 난민 신청을 하러 갔다가 도리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기도 한다. 저개발 국가 출신은 여권의 이름과 본명이 조금씩 다른데, 이런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퇴거 대상자가 되는 것. “난민인정절차를 밝는 동안만큼은 한국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야 하는데, 미등록체류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한 분들에게는 임시체류 비자(G-1)조차 주지 않아 생계유지도 불가능해요.” 결국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끊임없이 배제당해야만 하는 운명인 셈이다.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 박은하 인턴 PD
가두고, 괴롭히고, 쫓아내고… 경계에 버려진 사람들

“몸부림치는 난민에게 서너 명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달라붙어 두건을 씌우고 두 손을 포박했죠.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저희 같은 인권 단체가 면회를 왔다고 속여 면회실로 가는 도중에 들이닥친 겁니다.” (김대권 대표) 지난 해 6월 외국인보호소에 3년 이상 장기 구금돼 있던 난민 신청자 5명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중 몇몇은 난민 심사 재심청구를 위해 서류를 요청하던 중이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불법화된 야당 당원이었던 파키스탄인 A씨는 그렇게 강제 송환된 후 연락이 완전히 두절됐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였죠. 새 정부 인사가 들어오기 전에 외국인 보호소에 남아 있는 장기 구금자 수를 최대한 줄여야 된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가장 오래 있었던 난민들부터 강제 송환을 해버린 겁니다.” 놀랍게도 물리력을 동반한 강제송환은 현행법상 위법이 아니다.

“물리적 힘만 동원할까요? 온갖 협박으로 회유하기도 하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곳에 아무리 오래 있어봤자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일갈이다. “실제로 4년 8개월 동안 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나이지리아인이 있었어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바람에 난민 신청에 어려움을 겪다가 주어진 체류기간을 넘겨버렸고, 길거리 단속에서 붙잡혀 보호소에 갇힌 거죠. 자유롭게 변호사를 만날 수도, 본국의 상황에 대해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준비를 합니까.” 법무부 단계에서만 1년이 지체됐고, 재판을 거치면서는 2년이 훌쩍 날아갔다. 전문가의 조력 없이 법무부 직원과 나눈 대화 기록은 재판에서 번번이 불리한 증거가 됐다. “감옥에 가까운 보호소에서 3~4년씩 갇혀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빌미로 협박을 하는 거죠. 너도 결국 이렇게 될 거야. 그렇게 될 때까지 네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돌아가서 겪을 일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단식투쟁을 했던 방글라데시인은 결국 회유에 굴복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제3국으로 가는 건 힘드냐고요? 엄청난 선의를 가진 공무원을 만나는 기적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죠.”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제3국이 받아줄 리 만무하다.

왼쪽은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장기간 체류한 시리아 난민. 어깨 한쪽이 빈대에 물린 상처로 가득하다. 오른쪽은 인천공항 송환대기실 화장실 풍경. 난민들은 좁은 세면대에서 빤 옷을 화장실 변기 위에 널수 밖에 없었다. 김세진 변호사 제공

누구나 인정하는 시리아 출신 난민들조차 ‘명백한 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려 8개월간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갇혀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에서 아예 입국을 불허한 거죠. 창문 하나 없는 골방에 28명이 갇혔어요. 화장실은 딱 한 개였습니다.” 그 조차도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비위생적인 상태가 계속되자 벌레가 창궐했고, 빈대에 물린 피부는 오래 햇빛을 쪼이지 못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들어갔다. “끼니는 삼시세끼 치킨버거만 줬더라고요.” 할랄 방식으로 도축되지 않은 닭고기를 먹지 못하는 무슬림들은 패티를 걷어내고 빵만 겨우 먹었다.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그때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인 것 같다고.” 어필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이들은 결국 한국 땅을 밟게 됐지만, 학대에 가까웠던 시간은 영영 보상받지 못했다.

외국인보호소=교도소? 헌법 위의 출입국관리법

“외국인 구금이 얼마나 쉬운 줄 아세요? 재판 한번 없이 가둬버릴 수 있어요. 하루만 체류 기간 연장이 늦어져도, 미등록체류자이기만 하면 일단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죠. 출입국관리법이 그래요. 본국으로 송환할 때까지 무기한으로요.”(김세진 변호사) 헌법에 보장된 인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임에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이 조항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가 판시한 합헌의 사유는 ‘언제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을 하면 신체의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귀국이 곧 죽음인 난민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판결이었다. 변호사들은 말한다. 마치 헌법 위에 출입국관리법이 있는 것 같다고.

외국인보호소의 환경은 감옥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청주 외국인보호소는 여성 교도소를 개조한 시설이죠. 외국인 수용 목적으로 생긴 화성 외국인 보호소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도 별반 다를 것은 없어요.”(김대권 대표) 20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건장한 성인이 스무 명 가량 들어간다. 쪽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한 줌이 바깥 세상이 있다는 걸 자각하는 유일한 통로. 운동시간은 하루에 20분씩 주 5회가 전부다. “환기, 채광이 안 되니 몸이 순식간에 상해요. 그런데 수백 명이 수용된 화성 보호소의 상주 의사는 공중보건의 포함해서 2명이에요. 군대 의무실에서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여성분들은 생리대를 안 줘서 수건으로 대체하기까지 합니다.”

한 방에는 되도록 같은 국적 출신을 넣지 않는다. 집단적인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리직원들은 인종차별을 해요.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을 다르게 대한다는 거죠. 똑같은 부탁을 중국인들이 할 땐 한 번에 들어주면서 콩고인이 하면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겨우 들어주는 식으로요.” 건강상의 이유로 일시보호해제를 받은 외국인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다시 잡아넣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랜 보호소 생활로 밀폐된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던 한 장기구금자가 있었어요. 일시보호해제를 받아 의사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직원이 “조기축구회에 들어갔어? 건강하네.”라며 잡아들였죠.”

단속과정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어도 고발도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보호소 내의 열악한 환경을 미처 견디지 못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예요. 붙잡혀서 보호소로 끌려오는 도중에 온 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죠. 반드시 증거를 남겨서 제대로 고발하고, 끝까지 처벌받게 하자고 함께 다짐했는데…” 결국 피해자는 보호소의 혹독한 환경을 참지 못해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임금이 체불된 사람들도, 임대보증금을 떼인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기 일쑤입니다.” 영영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속과정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중국인.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김대권 대표 제공

이들은 단지 체류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해하거나 재산을 빼앗은 것도 아닌데 ‘불법’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붙여요. UN에서도 체류 기한을 넘긴 난민이나 외국인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지칭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UN 난민기구의 지침에 따르면 미등록 체류자, 서류미비자라고 써야 하지만, 대다수 언론에서는 ‘불법 체류자가 대낮에 거리를 활보한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당시에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희생됐어요. 잠긴 문만 열어줬으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는데 단지 ‘도주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 거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한국어교실을 열고 노동상담을 해오던 김 대표는 이때부터 난민을 비롯한 미등록체류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당연하다는 듯 죄인처럼 대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인이 아니라도 구금을 쉽게 용인하는 시스템은 얼마든지 국가 전체에 인권침해적 요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봤죠.”

그래서 이들은 입법 작업에 한창이다. 무기한 구금을 용인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63조를 손보는 개정안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구금의 상한은 1년으로 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법무부가 아닌 사법부가 구금 연장 심사를 하는 것이 골자다. “사실 변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은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거예요. 이 법안을 시작으로, 모호하게 쓰인 난민법도 손보는 것이 최종 목표랍니다.”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 만난 김세진 변호사와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 한설이 PD
우리도 한 때는 난민이었다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난민을 받을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팍팍한 목소리엔 어떻게 답하겠느냐고.

“유엔난민기구는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바로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죠. 이 뿐이었을까요? 일제강점기 상해에 임시정부를 꾸린 우리의 선조들도 일본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정치 난민’이었죠.” 제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라 여겨졌을 때, 대가 없는 선의가 간절했을 때, 우리는 누군가 내민 따스한 손을 잡았다. “되돌려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요? ”(김세진 변호사)

“제주도의 한 인권 단체가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걸 우연히 봤어요. 마침 올해가 제주 4ㆍ3사건 70주년이더라고요.” 1948년 당시, 만 명에 달하는 제주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총구를 피해 정신없이 올라탄 배가 마침내 닿은 곳, 일본은 완벽한 타지였다. 예멘인들에게 제주도가 차갑고 낯선 땅인 것처럼. “아직도 재일동포 중엔 제주출신인 고씨 성들이 많다더라고요. 과연 남일일까요? 우리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또다시 이방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대권 대표)

그렇다. 우리도 한 때 난민이었다.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아야 우리는 난민보호국으로서 세계 시민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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