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 미키타니 회장 페이스북 캡쳐

‘괴짜 최고경영자(CEO), 반항아 경영인, 일본 경제계의 이단아.’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라쿠텐(樂天)의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ㆍ53) 회장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재계에서 그는 항상 ‘상식 파괴와 혁신’을 앞세운 독특한 경영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쿠텐의 사명 자체도 우리 말로 그대로 옮기면 ‘즐거운 세상’이다. 회사 이름만으로도 파격 그 자체였다. 영어 이름도 만화 캐릭터 ‘미키마우스’에서 따온 ‘미키’로 지은 그는 성장 과정부터 사업 스타일, 창업 업종까지 기존의 일본 경영인에선 보기 쉽지 않은 개성으로 가득하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미키타니 회장은 55억달러(5조9,300억원ㆍ2016년말 기준)의 자산을 보유한 일본에서 다섯 번째 부자다. 그가 이끌고 있는 라쿠텐은 2016년 7,819억엔의 매출을 거뒀고, 1만5,000여명의 직원을 둔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다. 1억명이 넘는 가입자와 4만4,000개의 출점 점포(판매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실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업계에선 항상 혁신을 추구하는 그의 사업가 정신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룬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6명의 직원과 서버 1대로 라쿠텐 창업

일본 정보기술(IT) 업계를 선도한 1세대 벤처 창업가인 미키타니 회장은 일본 인터넷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했던 때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맨손으로 창업에 나선 인물이다. 미키타니 회장은 인생을 바꾸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수 출신의 아버지 덕에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 정도 밖에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그는 88년 도쿄대, 교토대와 함께 일본 3대 명문 국립대로 꼽히는 히토쓰바시 대학을 졸업하고, 미즈호 투자은행의 전신인 일본흥업은행에 입사했다.

변화는 그가 회사 지원으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학업과 회사 경영을 병행하는 동창들을 보며 자연스레 ‘기업가 정신’에 눈을 뜨게 된 것. 창업 의지를 실행에 옮기게 된 계기는 95년 고향인 고베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한신 대지진이다. 이 때 몇 명의 친구와 친척을 잃은 미키타니 회장은 안정된 삶과 익숙한 편안함에 만족하기 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돈과 지위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인생을 후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97년 2월 엠디엠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사업 아이템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는 전자상거래가 성장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단 6명의 직원과, 작은 서버 1대로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Rakuten Ichiba)’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하지 못했다. 라쿠텐이 인터넷 쇼핑몰을 열 당시만 해도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상품 카탈로그를 제공하는 수준일 정도로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았다. 라쿠텐 설립 첫 달 매출은 10만엔(약 98만원)에 그쳤다.

미키타니는 당시 일본 온라인 쇼핑몰 2,500여개를 낱낱이 조사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 대부분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탓에 상품 교체가 느리고 입점 비용도 최대 월 100만엔에 달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미키타니는 이를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았다. 입점업체 스스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형태를 취해 항상 새로운 상품 진열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업체가 라쿠텐에 내야 하는 입점 비용도 월 5만엔으로 파격적으로 낮췄다.

미키타니 회장이 하루 15시간씩 주 6일간 일하며 적극적인 영업을 한 결과 대기업 쇼핑몰 사이트를 차례로 누를 수 있었다. 2000년 자스닥에 상장했고 창업 10주년을 맞은 2005년에는 출점수 1만5,000개, 유통 총액 연간 4,000억엔에 이르는 일본 1위의 전자 상거래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상식파괴가 혁신 기업을 만든다

미키타니 회장은 ‘일본 경제계의 이단아’라는 별명답게 삶의 방식도 기존의 일본 경영인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작은 집에 소박하게 사는 게 미덕인 일본에서 도쿄 중심가 시부야의 5억엔(약 50억원)을 호가하는 호화 맨션을 보란 듯이 사들인 것도 그런 예다. 경영에만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도 구세대 일본 경영인과 다른 점이다. 테니스 라켓을 놓지 않는 것은 물론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도쿄 필하모니교향악단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미키타니 회장은 경영에서도 파격적인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일본기업들이 변화를 꺼리는 풍토와 대비된다. 그가 시도한 조직 혁신의 대표적 사례가 사내 영어공용화다. 영어에 능숙한 직원들조차 경악하게 만든 조처였다. 사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에 둔감한 일본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최근에는 공격적인 글로벌 인수합병(M&A) 투자로 눈길을 끌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분야에서 그는 ‘사냥꾼’으로 불린다. 2014년 무려 1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온라인 리베이트 업체인 이베이츠(Ebates)를 인수했다. 또 미국에서 바이닷컴(Buy.com)을, 영국에서는 플레이닷컴(Play.com)을 사 들이는 등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4년 인터넷 전화ㆍ메시지 서비스 업체인 바이버(Viber)에 9억 달러를 투자한 것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재 라쿠텐은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은행과 보험, 여행, 미디어, 전자상거래기업, 스포츠 구단까지 망라하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미키타니 회장의 새로운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라쿠텐의 마일리지인 슈퍼 포인트를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암호화폐)로 재편하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미키타니 회장이 20여년이란 짧은 기간 일본에서 돋보이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업 철학이 한몫 했다. 라쿠텐 본사에 들어서면 사무실 곳곳에 ‘성공의 다섯 가지 원칙’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다.

1. 늘 개선하고 전진하라.

2. 열정적인 전문가가 되라.

3. 가설을 제기하고, 실행하고, 증명하고, 시스템화하라.

4.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라.

5. 빠름, 빠름, 빠름.

이 원칙을 통해 미키타니 회장은 “목표를 정했다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고, 성공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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