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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미 대화, 이제 시작일뿐이다

입력
2018.06.13 19: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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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기대 만큼 실망도 적지 않아 북미대화 자체 되돌릴 수 없게 만들고 추상적 합의문 채워갈 후속 회담 중요

미국 미네소타대학 심리학자들이 ‘기대’와 ‘실망’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피험자 학생들에게 각각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몰래 듣게 했다. A는 정해진 시간에 계속 피험자를 칭찬한다. 반대로 B는 그를 비난만 했다. C는 처음엔 그 학생을 비난하다 칭찬하는 말로 끝을 맺었고, D는 칭찬으로 시작해 비난으로 말을 바꿨다. 피험자는 넷 중 누구에게 가장 호감을 표시할까. A일까, C일까. 정답은 C이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애초 가졌던 기대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결과가 같다 하더라도 기대가 컸다면 실망할 수 있고, 반대로 기대가 적었으면 만족할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대 위반 이론’이라고 부른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 일부 실망스런 평가가 나오는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장 이번 회담에서 북핵ㆍ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결정이 나오길 바랐던 사람들은 두 정상 합의문 어디에도 ‘CVID’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에서 두 정상이 평화협정까지는 아닐지라도 종전선언 정도를 이끌어내리라 기대했던 사람들 역시 낙담했을 법하다. 가까스로 실현된 역사적인 만남이었기에 현실 여건을 벗어난 기대가 부풀어올랐고, 그에 비하면 결과물이 초라해서 나오는 불만들이다.

실망감을 안겨줄 뿐인 섣부른 기대는 논외로 하더라도 냉정히 보면 회담 결과물이 환호할만한 수준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나 합의문까지 작성했으니 진전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으나 합의문 내용은 북미가 그 동안 해온 다짐의 반복일 뿐 새롭지 않았다. 상황이 꼭 같다고 하기 어렵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한 과거 합의문과 비교하더라도 구체성이 떨어지는 후퇴로 받아들일만하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는 비핵화, 한반도 평화ㆍ안전 등 선언적인 약속 외에도 경수로 지원, 무역ㆍ투자 제한 완화 등 경제 정상화 방안 등이 망라됐다. 6자 회담의 결과물인 2005년 9ㆍ19 공동성명에서도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에너지ㆍ교역ㆍ투자 협력이 담겼다.

그간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는 거칠게 요약하면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 안전ㆍ제재 해제를 서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늘 비핵화를 하면 ○○을 제공한다는 어법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 서두에서 두 정상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고 상호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4가지 합의사항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보다 새로운 북미 관계 조성을 위한 노력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 먼저 등장한다. 미국의 기존 문법과 다르고, 심지어 북한의 논리에 근접한 분위기마저 든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일 기자회견에서 설명했고 하루 지나 북한 매체도 확인한 ‘대화 기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도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다.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해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일방에서 도발로 받아들이는 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한미가 그 동안 이런 군사훈련을 북한의 도발 위협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방어 목적으로 진행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이 결정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너무 컸던 기대는 결국 배반당하고 말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로써 모든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핵을 둘러싼 거래의 과정은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이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듯 보이는 두 정상의 합의문을 어떻게 메워가느냐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얼른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을 깨는 것보다 어떻게든 유지해야 이득이라는 것을 트럼프도 김정은도 모를 리 없다. 남북미중이 이제까지보다 더한 노력으로 이제 막 시작된 한반도 평화 만들기 작업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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