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갤] 2015년 히노시 초4 남학생 의문사 사건

게티이미지뱅크

“삑~ 삑~.”

2015년 10월26일 오후 8시. 도쿄 히노(日野)시 미사와(三沢) 4가의 한 야산 오솔길. 호루라기 소리가 적막을 깨고 형사들의 귀를 요란하게 잡아 끌었다. ‘아이를 찾았다’는 신호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오솔길 옆 비탈. 이날 오전부터 8시간 넘게 행방이 묘연했던 A군(10)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A군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비탈길 아래 비스듬히 누운 채 숨져 있었다. 차갑게 식은 몸엔 가을 밤 한기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타살이 의심됐고, 그게 상식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내사를 거쳐 해당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 지었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것.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수상한 현장, 이상한 죽음

사건 현장은 육안으로 보기엔 타살 외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A군은 뒷짐진 양손과 발을 비닐 끈으로 결박한 뒤, 나무 밑동에 고정된 밧줄을 목에 매고 비탈길 아래 매달리듯 누워 있었다. 산비탈의 경사(약 30도)를 이용해 질식을 노린 것으로 추정됐다. 알몸 상태였고, 옷가지는 근처 나무 아래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로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수사 베테랑’인 경찰들도 처음엔 타살을 의심했다. 그러나 A군의 사인이 질식사라는 부검 감정서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제3자에 의해 강요된 자살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이 남는 게 당연했다. 육체적 사인이 질식사라면, 심리적 사인은 뭘까. 병사(病死) 등을 제외한 선택적 죽음엔 나름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바로 죽음의 심리적 사인일 터. 하물며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택했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경찰은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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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원인은 ‘이지메’?

서류상 A군이 소속된 초등학교는 히노 시내의 B초등학교였다. 그러나 실제로 다닌 초등학교는 옆 동네 다치카와(立川) 시에 자리한 K학교. K학교는 오스트리아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예술 중심 교육 사상인 ‘발도르프(Walldorf) 교육’을 현지에 맞게 변형한 대안학교였다. 2010년 유네스코(UNESCO)가 공식 학교로 인정했을 만큼 교육 과정도 충실했다.

다만 K학교는 진학 시스템이 독특했다. “인간의 성장을 포괄적으로 살핀다”는 기치 아래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한 반에서 같은 아이들과 생활하도록 했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다. A군은 사실 지독한 ‘이지메(따돌림)’ 피해자였고, 수년 간 같은 반 아이들의 놀림을 견디다 못 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가해 아이들에 의한 강요된 자살도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아이들이 A군을 괴롭힐 목적으로 A군에게 ‘알몸 목 매달기’를 강요했고, 죽음은 이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고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었다.

경찰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그러나 증거가 말하는 바는 달랐다. A군을 결박한 비닐 끈과 밧줄에선 A군 외에 어떤 지문도 검출되지 않았다. DNA도 마찬가지였다. 강요된 자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남아야 할 ‘저항흔(범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몸에 생기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A군은 교우관계가 원만했다. 가정의 전제부터가 틀렸던 셈이다. 자살이 아니라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었다. 듣기에도 생소한 단어. ‘자기색정사(自己色情死)’였다.

목 조르며 쾌감 느끼는 사람들

뇌에 갑자기 산소가 차단될 경우 일어나는 증상 중 하나가 환각이다. 이 점을 악용한 놀이가 2000년대 중반 전 세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기절놀이’다. “기분 좋게 해주겠다”며 순간적으로 상대의 목을 압박해 실신시키는 이 놀이는 사망 등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며 사회 문제로 떠올랐었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전북의 한 초등학생이 이 놀이를 하다가 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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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성적(性的)으로 활용하는 행위를 ‘브레스 컨트롤(Breath Control)’이라고 한다. 스스로 목을 조르거나, 남에게 목을 졸리면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손보다는 보통 밧줄 등 기구를 써서 조른다. 그러다 보면 실수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법의학 용어로 ‘자기색정사’라고 한다. “스스로 성욕을 채우려다 사망했다”는 뜻이다.

자기색정사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영화 ‘킬빌’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배우 데이비드 캐러딘이 대표적이다. 2009년 영화 촬영 차 머문 태국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맨 알몸 시신으로 발견된 그는 부검 결과 성적 쾌감을 얻기 위해 자기 목을 조르다 실수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명됐다.

A군과 캐러딘 사이엔 공통점이 많았다. 알몸으로 발견됐고, 목을 맨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은 A군의 자기색정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장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자기색정사 현장에선 일반적으로 도색잡지 등 성 관련 물품이 발견되는데, A군의 현장엔 전혀 그런 게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유족 반발도 거셌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죽음의 이유로 언급하기엔 너무 민망한 사인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사고사’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유족을 비롯해 네티즌들은 여전히 타살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가족만큼 A군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K학교 측도 마찬가지다. K학교 관계자는 “‘이지메’를 당하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살이라면) 왜 자살했는지 짐작도 안 간다”며 “(죽기 며칠 전에도) 평상시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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