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쓰는 무의식적 표현들 안에서 제게 거슬리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혀’라는 표현이나 ‘완전’이라는 표현 같은 것들입니다. 오래 전 제가 수도자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고 있을 때 갓 들어온 수도자들 중에 공동체에 실망을 느끼고 공동체를 떠나려는 초심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바로 ‘우리 공동체에는 사랑이 전혀 없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무의식이 담겨 있는 이런 표현들에 예민하여 즉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지요. 우리 공동체에는 사랑이 전혀 없습니까? 그렇다면 왜 이 공동체에는 사랑이 전혀 없다고 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에는 사랑이 전혀 없다고 합니까? 하고 따지고 듭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 공동체에는 사랑이 전혀 없는지 물으면 깜짝 놀랍니다. ‘전혀’라는 말을 자기가 썼는지도 모르고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런 표현을 썼냐고 되묻고는 잠깐 생각해본 다음 사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사실 전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제가 볼 때에는 사랑이 많은데도 이런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쓰는 것인데 그 이유는 완전한 사랑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수도원은 천사들만 사는 곳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수도원도 여느 곳처럼 사랑과 미움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무척 실망을 하고, 완전을 기대한 만큼 전혀 사랑이 없다고 느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의식의 과장’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좋아도 좋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좋건 싫건 그 표현을 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요즘은 제가 볼 때 조금 좋은 것을 가지고도 ‘완전 좋아!’, ‘대박이야!’라고 과장된 표현이 저절로 나옵니다. 나쁜 감정도 과장하고 좋은 감정도 과장하려는 것이 인간에게 대체적으로 있지만 요즘 감성의 시대에서는 그것이 더 심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완전히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그런 공동체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이 ‘무의식의 과장’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나쁜 감정의 과장은 나쁘지만 좋은 감정의 과장이 왜 나쁘냐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누가 아무리 그렇게 얘기를 해도 저는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우리가 좋은 것만 과장하고, 나쁜 것은 축소하면 좋은데 무의식이란 것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동하는지도 모르고 작동하는 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반찬이 여러 개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에 손이 가는지도 모를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데 이런 무의식의 문제를 문제라고 크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무의식이 우리의 존재와 삶 대부분을 좌우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의 존재와 삶은 이 무의식에 지배를 받고 있는데 이 무의식이 의식의 검열과 교정을 받지 않은 채 남을 판단하여 관계를 끊기도 하고, 결정을 하여 일을 벌이기도 하고 접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이 무의식과 감정이 만날 때 무의식의 과장은 더 커지고 쏠림 현상까지 낳는다는 점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본래 쏠리고 빠져드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누구와 무엇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있으면 우리의 무의식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나쁘게만 생각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며, 극단 또는 한 쪽으로 치닫게 만들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개인에게 국한되면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닌데 사회적으로 집단 쏠림 현상이 일어나거나 극단주의가 득세를 하면 이것이 큰 문제이고, 극우적 정치가들이 이런 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면 더 큰 문제가 되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현상을 우리 국내 정치와 국제 관계에서 보게 되어 걱정을 하는 요즘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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