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또다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27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진은 두 정상이 작별에 앞서 포옹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중국에 갔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하지 않은 유일한 외부 일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관춘을 방문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와 판교테크노밸리를 합쳐놓은 듯한 중관춘은 1988년 중국 최초의 첨단 기술 개발구로 지정된 곳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 곳은 베이징대ㆍ칭화대 등과 가까워 정보기술(IT) 관련 기업과 창업 카페 등이 즐비하다. 당시 김 위원장이 부인 이설주 여사와 함께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한 모습은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14일에는 박태성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참관단’이 다시 중관춘을 찾았다. 우리의 광역단체장 격인 시ㆍ도 당 위원장으로 꾸려진 참관단은 이후 24일까지 시안, 상하이, 닝보 등 중국 전역의 주요 산업시설과 IT 기업, 인프라 관련 공기업, 농업기술연구소 등을 두루 시찰했다. 박 부위원장은 "중국의 경제건설과 개혁개방 경험을 배우러 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 방문 시 중관춘을 찾은 뒤 당 간부들을 중국식 개혁개방 현장으로 보낸 것은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것은 평양에도 북한식 실리콘밸리나 중관춘을 만드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카드로 완전한 체제 안정을 보장받은 후엔 경제 개발에만 ‘올인’하는 김정은식 개혁개방 정책을 펼 공산이 크다.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하고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면서 첨단 IT 산업을 키워 남 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사는 ‘인민들의 천국’을 만드는 게 김 위원장의 꿈일 것이다.

사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이밥에 고깃국’을 지향했다. 그러나 종전이 아닌 정전 체제 아래에선 경제에만 100% 매진할 순 없었다. 경제보단 항상 국방이 우선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先軍)정치를 편 이유다. 특히 미국의 뜻대로 핵을 넘겨줬다 결국 목숨까지 내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최고지도자 사례는 북한의 핵 개발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것은 공교롭게 카다피가 사살된 지 두 달 뒤였다.

20대에 1인자가 된 김 위원장으로선 우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핵 무력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며 국가와 정권을 보위하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나온 게 핵ㆍ경제 병진 노선이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국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정도의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만큼 전당, 전국은 이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미 정상회담은 하나의 이정표다. 특히 최근 회담 취소ㆍ재개 해프닝은 길게 보면 김위원장의 경제 올인 전략에 힘을 더 보태줄 것으로 기대된다. 개혁ㆍ개방에 대한 북한 군부와 보수파의 반발을 이번 파문을 계기로 상당 부분 무마시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미국 내 강경 보수파의 북한에 대한 의심과 반대를 일거에 해소한 효과가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김 위원장의 북한이 이제 개혁ㆍ개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북미 정상회담이란 정치적 쇼나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란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큰 흐름을 보고 대비해야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과거 중국의 개혁ㆍ개방 정책도 해외 화교 자본들이 적극 투자에 나서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북한 시장이 열린다면 한민족인 우리가 마땅히 선두에 서야 한다. 이미 눈치를 챈 미중일 자본은 경쟁하듯 북한으로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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